범 내려온다

김진우 정치부장

2022년이다. 새 마음 새 뜻으로 한 해를 시작하자고 다짐해보지만, 희망보다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옥죄고 있는 탓이 크다.

김진우 정치부장

김진우 정치부장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이 우한에서 바이러스성 폐렴 사례를 발견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처음 보고한 지도 2년이 지났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게 옷을 입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 되리라고 그때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3일부터 사적 모임 최대 인원 4명, 식당·카페 영업시간 제한 오후 9시인 현행 거리 두기가 2주 더 연장된다. 앞으로 얼마를 더 참고 견뎌야 할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그렇다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하루하루가 힘겨운 시민들을 위로하고,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겨낼 길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은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해다.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뽑고, 도지사도 뽑고, 시장·군수들도 다 새로 뽑는다. 특히 3월9일 20대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의 향후 5년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선 과정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었냐고 묻는다면 ‘아니올시다’이다. 이번 대선이 역대 최고 ‘비호감 대선’이 될 것이란 전망을 차곡차곡 증명해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나 고발사주 등 여야 대선 후보를 둘러싼 의혹은 디폴트(기본값). 후보들의 자질 논란에 가족 리스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 배우자의 허위 이력 의혹과 아들의 불법 도박 의혹으로 여야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개를 숙이는 일도 벌어졌다.

여야 정당들의 대응은 더욱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한다. 검증이라는 미명 아래 마구잡이식으로 무리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저열한 비난을 퍼붓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집권하면 배우자인 김건희씨가 실권을 쥐고 흔들 것이라 모두 다 염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게 김씨가 사석에서 윤 후보에게 반말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김씨의 허위 이력 기재 의혹에 대해 “제목을 근사하게 쓴 것뿐”이라고 옹호했다. 역시 어이가 없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 아들의 대학 입시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가 8시간 만에 사과했다. 학과와 전형 방식만 확인해도 알 일을 두고 ‘묻지 마 공세’에 나섰다가 망신살이 뻗쳤다.

한국 정치에서 네거티브 공세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후보나 주변 검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도를 넘었다. 정책이나 미래 비전 경쟁보다 상대방 흠집 내기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퇴행적 행태만 두드러진다. 이럴 거면 “더 이상 네거티브 전쟁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는 말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말들도 거칠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품위를 바라는 게 민망할 지경이다. 대구·경북(TK) 지역을 방문한 윤석열 후보는 ‘주사(주체사상)’ ‘좌익 혁명 이념’ 등 낡은 이념적 표현을 동원해 여권을 비난했다. ‘미친 사람들’ ‘무식한 삼류 바보들’ ‘같잖다’ 등 원색적인 용어도 사용했다.

그러더니 2022년 신년사에선 모두 ‘국민 행복’과 ‘통합’을 말한다. 어안이 벙벙하다. 국민 정신건강을 해치지나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다. 예부터 호랑이는 용맹함과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그림이나 부적에 새겨 역병과 액운을 막는 수단으로 쓰였다. 호랑이의 기운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길 소원한다. 대선이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과정이 아니길 바란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과정이길 기원한다. 시민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는커녕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이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이들은 누구인가. “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언어학자 신지영 고려대 교수). 어렸을 때 “말 안 들으면 범이 물어간다”고들 했다. ‘그런 말’ 하다간 범이 내려와 물어갈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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