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실어드립니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언론대응을 하면서 두는 불문율이 있다. 오랜 시간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과 혐오에 기반한 차별적 관점을 고수해온 신문사와 방송사를 보이콧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을 왜곡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책임은커녕 수정조차 하지 않는 사례들이 여론을 혼탁하게 만든 데 대한 판단이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다른 신문과 방송사라고 항상 인권 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더러 이들은 성소수자를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피해자로 점철시킨다. 같은 사건을 다뤄도 맥락과 상관없이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부각하기도 한다. 선의를 바탕으로 할지라도 그릇된 의미부여는 피하기 어렵다. 물론 당사자와 언론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관점을 수정하고 이후 방향을 다듬을 수 있다. 모니터링을 통해 성원들은 리터러시 역량을 높이고, 언론은 섬세하고 날카로운 기획을 생산하는 선순환을 이어간다.

하지만 또 다른 화두가 있다. 종종 신문들은 지면에 반인권적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싣는다. 특히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동성애와 이주민, 낙태죄 폐지 반대를 주장하는 광고들이 늘었다. 1월10일자 한국일보에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신문은 6면에 소수정당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정치인의 인터뷰를 포함한 기사를 전면에 실으며 여야의 대선 후보가 소수자와 성평등, 빈곤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음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22면에는 ‘차별금지법 반대’와 ‘낙태법 개정안 입법’을 주장하는 전면광고를 배치한다. ‘올해 3·9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이러한 대통령 후보와 지방자치단체장 및 교육감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신문의 방향과 적대적인 광고를 게재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인권·사회운동과 접면을 넓혀온 언론들 또한 광고와 관련하여 수차례 지탄받은 바 있다. 노동자투쟁에 주목하고 기업비리를 파헤치면서도 해당 기업 브랜드 광고를 싣는가 하면, 사회적 소수자들을 다루면서 혐오를 추동하는 광고 게재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항의를 하면 대부분 광고 선정이 데스크의 권한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는데, 이는 진정 온당한 해명일까.

광고가 특정 내용을 담아 기사와 같은 지면에 실리는 이상 ‘본지의 방향과 무관하다’는 전제는 논리부터 맞지 않다. 광고마다 메시지와 톤이 상이하고 기획과 일치하는 것만 싣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해당 광고들이 노골적으로 언론의 방향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본인들의 권한 밖이라는 핑계는 제집 앞마당에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자본이 차고 들어오는 상황을 견제할 권한마저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다름없다. 기획과 상반된 광고를 전면에 배치한 상황은 기획을 위한 기자의 노고와 데스크의 신념을 조롱하는 것 아닌가. 비판 없는 광고 게재는 독자뿐 아니라 저널리즘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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