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금기

신예슬 음악평론가

화성학 선생님은 그날따라 무정한 표정으로 답안지에 빨간 선들을 그었다. 유독 많이 틀린 날이었다. 대충 풀어갔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예상보다 많이 틀려 부끄러웠지만, 그럴 때면 음악에 맞고 틀리고가 도대체 어딨나, 그 기준은 누가 정했나, 하는 반발심이 들곤 했다. 고단한 채점을 마치고 선생님은 ‘성부침해’, ‘병행’, ‘은복’ 등 오답의 종류가 고루 분포하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오답의 한 예라는 평을 남겼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신예슬 음악평론가

성부침해는 예컨대 가장 낮은 음역에서 노래하기로 되어 있던 목소리가 그 위쪽 음역을 노래하던 목소리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했을 때 생기는 일이다. 일시적인 영역 침범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병행은 두 음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움직일 때 생기는 일로, 대학 입시를 위한 화성학에서는 1도·5도·8도 병행을 지양한다. 소위 ‘텅 빈 소리’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은복은 바로 이 병행이 어딘가에 은닉해 있는 것으로, 이 또한 지양된다.

물론 이런 지식이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경험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필수 조건은 아니다. 실제 음악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입시에서 지양될 뿐이다. 언젠가 바흐의 코랄에서 그런 예를 찾은 나는 레슨 시간에 그 악보를 가져가 ‘선생님 여기서 바흐도 병행한 거 아닌가요?’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응 맞는데, 너는 너고 바흐는 바흐지. 일단은 열심히 배우고, 나중에 생각하자’였다. 나와 바흐의 격차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다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런 지식을 체화하게 됐다. 애초부터 그 ‘텅 빈 소리’를 피해가고, 목소리들이 서로의 선을 넘지 않게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화성법 답안지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나름의 비판적 시각 없이 어떤 법칙들을 몸에 체화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맹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유럽 음악사 속 중세의 성악곡을 들을 때면 ‘텅 빈 소리’들이 늘 들려왔고, 수많은 선율들이 뒤엉키는 낭만 시대의 기악 합주곡들에서는 ‘성부침해’라는 개념이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것만 같았으며, 당대 유럽인들에게 낯선 문화권의 음악이 창작에 영향을 미쳤던 경우, 이 음계 안에서 나올 수 없을 만한 진행들이 나오곤 했다. 내가 오답이라 체화해왔던 것은 도리어 각 음악의 핵심으로 여겨지거나, 그 음악을 가장 빛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오래된 역사나 근과거, 현재 등 음악사의 어떤 시점을 보더라도 그 법칙이 완전하게 들어맞는 음악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최선을 다해 그 금기들을 빠르게 잊어야 했다. 내가 배운 것은 특정 지역에서 어느 한 시점에 통용됐던 지엽적 이론일 뿐, 세상의 모든 음악을 판가름하는 절대적 지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틀린 음’들은 때로 ‘맞는 음’보다 듣기 좋았다. 언젠가 한 작곡가는 화성법상에서 통용되어온 그 금기들로 가득한 곡을 썼다. 화성법상에서 보자면 죄다 틀린 것들이었지만, 듣기에 꽤 즐거운 곡이었다. 화성학을 배우며 같은 종류의 의구심을 느꼈던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함께 웃었다. 그런 법칙들이 때론 음악의 실제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이론의 차원에서 음악을 사유하고 배우는 일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감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용한 도구로 쓰인 채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계속 남아 모든 음악의 원리로 자리 잡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찔해진다. 그것이 너무 오래된 금기라면 더더욱 말이다. 여러 경험이 쌓인 뒤, 다시 음악이론서를 보다가 ‘그것은 금지된다’는 표현을 보면 그 말이 조금 고약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음악에서 금지해야 할 것은 어떤 음이나 진행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틀렸다, 금지된다, 라는 표현 자체인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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