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음식물처리기 실체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나도 얼마 전 영끌족에 합류했다. 집을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수많은 선택과 결단의 과정이었다. 확장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냉장고 자리는 비워둘 것인지 수납장을 만들 것인지 수많은 옵션에 체크를 하고 추가금을 납부하고 겨우 숨을 돌리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비공개 카페가 초대를 했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분양받은 동, 호수가 찍혀 있는 계약서에 실명까지 인증을 해야 할 정도로 폐쇄적이라 찜찜했지만 대출이나 등기 과정에 모르는 것투성이라 결국 가입했다. 주로 인테리어에 필요한 물품들이나 가구, 가전 관련 공동구매(공구)가 이루어지는 그곳은 새로운 소비 별천지였다. 무엇보다 수많은 업체들을 몰고다니는 공동구매의 주관사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주관사의 지휘 아래 파격 구매가와 이에 대한 찬양 후기가 계속 올라오니 하루에도 몇 번씩 통장 잔액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다 스스로 멈춤 버튼을 누르게 된 계기는 음식물처리기 공구였다.

물기를 털고 아파트 1층까지 들고 나가 버려야 하는 음식물쓰레기의 처리 과정은 번거롭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싱크대 앞에서 간단하게 버튼만으로 해결해준다는 제품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음식물을 쏟아붓고 물을 튼 채 버튼만 누르면 끝난다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더 이상 상한 음식물을 만지지 않아도 되고, 버리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이게 친환경적 방법이란다. 각종 특허와 인증 내역을 보여주는데 이렇게나 좋은 제품들을 왜 굳이 비공개 카페에서 폐쇄적으로 광고하는 것일까? 이상하다. 더 알아보고 싶었다.

신문 기사라면서 언론사 이름도, 정확한 게재일도 알려주지 않는 보도자료야 무시해버리고 알아보니, 각종 허가와 인증 내역의 제품명이 상이하거나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 있었다. 홍보 내용의 진위는 차치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고형물을 수거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하수구로 흘려보낸 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 불법이다. 음식물쓰레기를 주기적으로 수거하지 않는다면 특허를 받은 음식물처리기라고 광고해도 그저 단순한 믹서 그 이상이 아니다. 나는 신기술과 친환경이라는 포장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환경 파괴자로 만드는 이 기만을 견디기 어려웠다. 광고글에 반론을 제기하고 상하수도 협회와 물기술 인증원이 제공하는 인증자료를 업로드했다. 나뿐 아니라 음식물처리기의 환경보호 효과에 의심을 품은 다른 주민들도 열심히 업체들에 자료와 입장을 요구했다. 얼마 후 업체들은 고객들에게 사후 조치를 취하겠노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행사를 주관한 업체에 책임을 묻고 싶었지만 그들은 구입했다면 환불을 해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더 이상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입주가 거의 끝나자 카페는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이 소동이 다시 생각난 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신축 건물 싱크대에 분쇄기를 설치토록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건물마다 바이오 가스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가늠조차 안 되지만, 이보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으지 않고 하수구로 바로 내보내게 하는 것이 음식물쓰레기를 저감하는 친환경 정책이라는 데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 소비자를 기만한 기업들과 정책의 대가는 어떻게 치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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