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력 축소론’이 놓치는 것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선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필자와 같은 헌법학도의 입장에서 특히 흥미로운 공약은 아무래도 유력 후보들의 권력 운용에 관한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명 후보는 통합정부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라는 명칭을 거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인격적 권력 운용을 넘어섬과 동시에 행정권력을 공유하겠다는 다짐이다. 윤석열 후보는 청와대 해체를 약속하고 있다. 청와대라는 명칭에서부터 그곳의 집무실을 하루도 쓰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두 공약 모두 87년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대통령의 권력 축소론의 연장선에 있다.

유력후보들이 대통령 권력 내려놓기에 합의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이러한 발상은 자칫 헌법이 설정한 권력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민주공화국에서 주권자 국민을 중심으로 민주적 정부를 구성해야 할 헌법적 명령을 준수하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 힘빼기 공약들이 제시되는 공론장이 바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선거과정이라는 점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즉 민주적 정부 운용의 관점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개인적 권력이라기보다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공적 권력이기 때문에 권력을 내려놓더라도 제대로 내려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즉 함부로 아무 권력이나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바지사장과 같은 허수아비 대통령을 뽑자고 이 난리를 벌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탄핵과 같은 특별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소추도 받지 않는 대통령의 특권을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대통령의 힘빼기는 주권자의 선거라는 절차가 부여하는 헌법적 무게를 감당하면서 민의를 효과적으로 수렴하여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치의 비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후보들은 청와대해체론이나 통합정부론의 구호를 넘어 민주공화적 대통령제에 부합하는 협치의 비전과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다른 정책적 공약들이야 수정되거나 심지어 폐기될 수 있지만, 권력 운용과 관련한 공약은 대선의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에 허투루 약속되거나 두루뭉술 넘길 수 없다.

민주공화적 헌정 운용상 협치는 소협치, 중협치, 대협치로 구별될 수 있다. 소협치는 대통령 후보를 공천한 집권당과 주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의 협치이며, 일반적으로 당·정·청 관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민의를 수렴해야 하는 집권당과 법치행정을 구현해야 하는 행정부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민주적이면서도 능률적인 정부의 조건이다. 대선은 소협치의 기본 구성을 정하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청와대해체론과 통합정부론은 소협치의 원칙을 대통령 힘빼기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중협치는 당·정·청 관계를 넘어 야당까지도 협력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 추구하려던 협치의 방식인데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중협치의 비전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정치보복 시비를 낳은 윤석열 후보의 적폐수사론과 검찰통치의 비전은 중협치와는 거리가 멀다. 이재명 후보의 통합정부론도 중협치의 비전을 담아낼 수 있는 개방성은 가졌지만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협치는 대의제를 명분으로 소홀히 되어온 주권자 국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하여 제도화하는 것이다. 대협치는 민주공화국이 추구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행하는 것이며 87년체제에서도 여전한 동맥경화에 걸린 대의제 정치과정을 개혁하는 과제이다. 대협치는 국민이 원하며 필요로 하는 것에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통로를 구축하는 것이며, 방법론의 차원에서는 소협치와 중협치가 난관에 봉착한 다양한 난제나 중장기과제에 대해서 국민의 의견과 지혜를 직접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거시적 비전이 실종된 이번 대선에서 청와대해체론이나 통합정부론의 공약이 모두 놓치고 있는 민주적 정부의 과제로 보인다.

다단계 협치의 실현은 ‘권력의 의인화(擬人化)’라는 부작용으로 흐를 수 있는 인격중심의 대통령 정부론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다양한 권력주체들이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민주공화국을 굳건히 하는 필요조건임을 대선 후보들이 지금이라도 성찰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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