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학교, 가깝고도 멀리 있는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주택가가 더 이상 발달하기 어려운 구도심에는 한 학년에 한두 학급 정도로 규모가 작은 초등학교가 꽤 있다. 이런 추세는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심화될 것이다. 앞으로도 학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대전의 한 소규모 초등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구청의 마을교육공동체 지원을 받고 마을교육을 추진하는 초등학교였다.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혹시 학교가 소재한 ○○동에 살고 있는 교사가 계신가요?”라는 질문에 손을 든 교사는 없었다. 범위를 넓혀 ○○구로 질문하니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모두 대전에 살고 있었고, 광역이지만 대전에 대한 지역 정체성과 소속감은 공유한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대전과 인접한 충북의 한 군 지역은 교사 대부분이 대전에서 출퇴근한다고 한다.

순환전보제에 따라 학교를 이동하는 교사가 학교 소재지에 거주할 의무는 없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직장 소재지에서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지역과 학교의 관계’다. 위 질문을 수정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동은 어떤 곳인가요?” “학교는 ○○동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학교와 ○○동이 함께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지역에서 학교는 학령기의 자녀를 맡아서 교육하는 곳이며, 지역 거주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지역과 학교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학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학교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학교에 일정한 역할을 기대한다. 그러나 지역과 학교는 가깝고도 멀다.

지역과 함께하는 교육에 있어서, 학교와 교육청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국가교육과정 외에 지역교육과정을 만들고 운영했으며, 지역교과서와 지역 관련 교육자료를 제작하고 활용해 왔다. 학교에서 지역과 연계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진 것은 오래되었고,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와 고등학교의 선택 중심 교육과정 및 고교학점제는 학교 밖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자원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2011년 경기도에서 시작한 혁신교육지구는 학교 차원의 개별적인 공교육 혁신을 지역 차원으로 확장하면서 지역교육공동체를 목표로 하였고, 현재 상당수의 기초 단위 지역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나아가 미래학교의 모델 중 하나로 ‘마을학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지역도 있다.

이러한 지역 연계와 자원 활용 외에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노력으로 주목했던 사례는 전북 완주의 ‘로컬에듀(local-edu)’이다. 큰 도시와 인접하여 중학교 단계부터 학생이 유출되는 상황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지역민이 원하는 교육을 완주 안에서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 지자체에서 주로 관심을 가져온 우수학생 지원과 교과 보충학습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접근이라는 점은 의미가 컸다. 충북 옥천은 지역 이해를 위한 교사 연수를 공들여 하고 있다. 지역의 상황과 문제의식에 따라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러한 노력을 몇 사람의 의지와 헌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으로 가능케 하고 지속할 수는 없을까? 학교운영위원회가 법정기구로 학교에 설치된 지 30년이 되어 간다. 교원, 학부모, 지역사회 위원으로 구성되어 지역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청취하는 구조다. 지방교육자치제로 집행기관인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문제는 학교 참여와 지방교육자치에 대한 효능감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밖에서 볼 때 학교 담장은 여전히 높고, 국가 중심의 교육행정 운영 풍토가 강하며, 광역 단위의 지방교육자치는 손에 잘 닿지 않는다. 지역과 학교에 대한 관(官)의 접근은 자발성과 절실함, 참여와 연대를 북돋는 지원이어야 하나, 종종 ‘행사하기’에 머문다.

분명한 것은, 지역이 없으면 학교도 없다. 학교가 작아지거나 사라지면 지역 위기와 소멸도 가속화된다. 학생과 지역은 분리할 수 없고, 학생의 삶과 연계되는 교육이 필요하다. <마을로 돌아온 학교>에서 이인회(제주대 교수)는 마을에서 출발한 학교가 다시 마을로 돌아올 때이며, 학교와 마을이 연계된 교육생태계를 제안한다.

‘학생의 삶과 터전’을 중심에 두고 학교의 역할을 재규정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교육이다. 더불어 지역의 교사를 양성하고 정주를 지원하는 방안, 지역의 교육생태계 속에 학교는 물론 대학과 평생학습까지 함께하는 방안 등 지역과 학교에서 “절실한 것부터” 시도해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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