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스카우트’ 거절한 까닭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강원 화천군 간동면은 애호박으로 유명하다. 기온이 낮다보니 잘 무르지 않고 수확해도 2~3일을 더 유통할 수 있다. 한때 서울 가락시장의 도매법인에서는 간동면에서 온 애호박 하역 장소를 따로 마련해 둘 정도였다. 돈 되는 애호박 농사를 짓겠다며 마을로 들어오려는 젊은 귀농인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주민모임을 만들고, 영농조합법인도 세웠다. 한때 영농조합에서는 애호박만으로 십수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단다.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00여명에 달했고, 주민들은 아이들 교육을 함께 고민했다. 공부방, 영어캠프, 마을캠프 등이 만들어졌다.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인근 홍천, 양구 등에서도 돈이 되는 애호박을 재배하게 됐다. 2010년 이후부터는 애호박 공급이 넘치면서 시장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간동면에 들어와 농사지으려는 젊은 귀농인의 유입도 끊겼다. 마을 영농조합에서는 더 이상 애호박을 취급하지 않는다. 애호박을 재배하던 한 농부는 지금은 담배농사를 한다고 했다. 계약 재배라 판로가 확실한 게 장점이지만, 인근에서만 10가구가 담배 농사를 짓다보니 잎 따는 시기가 겹쳐 매번 일손 부족에 시달린단다. 그래도 애호박 농가보다는 사정이 낫다. 애호박 농부들은 4년 전에도, 지난해 여름에도 밭을 갈아엎었다.

젊은 귀농인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간동면도 다른 농촌 마을과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의 교육공동체는 사라지고, 초·중·고교는 폐교 위기에 놓였다. 인근 도시인 춘천으로 떠나는 이들이 늘어났다. 간동면은 소멸 위기에 빠졌다.

농촌 위기의 실상은 농업의 위기

간동면 애호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달에도 고흥, 제주, 무안에서 겨우내 기른 양파를 농부들이 갈아엎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소비 저하 탓에 지난해 수확한 저장 양파가 여전히 남아있는 데다 이번에 햇양파까지 나오면서 양파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이번 양파 가격이 좋지 않으니 다음번에는 양파가 아닌, 마늘을 심는 농가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 작목, 저 작목으로 틈새를 찾아다녔지만, 항상 그 틈새에서 도망친 다른 동료들을 만날 뿐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반대하며 2003년 자결한 이경해 농민의 한탄스러운 이야기가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농업을 챙기겠다”던 촛불정부는 오는 4월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농산물 평균 관세철폐율이 73%인데, CPTPP는 이보다 높은 96.1% 수준이다. 농사지어 먹고살기가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돼가고 있다.

한때 잘사는 마을이었던 화천의 간동면은 이제 쇠락해졌다. ‘지역 소멸을 막겠다’며 화천군이 군민들에게 자녀 대학 등록금 등을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간동면에서 농사짓겠다는 젊은 청년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화천군처럼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감소, 고령화, 폐교 같은 농촌 현안을 해결하겠다며 마을마다 수억~수십억원을 들여 ‘청년마을 만들기’ ‘작은 학교 살리기’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 농촌이 처한 위기가 사실은 농업의 위기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놔두고 결과만 붙들고 있으니 대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거나, 귀농하면 돈과 집을 주겠다는 등 포퓰리즘 정책만 난무한다. 물론 이조차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 상황서 누가 귀농을 하려 할까

“이 기자, 요즘도 귀농할 생각이 있는 거죠? 우리 마을로 와요, 마침 이 기자가 할 만한 일이 생겼어요. 내가 농사법도 알려주고 집도 알아봐줄게요.” 며칠 전 아는 농부님으로부터 ‘귀농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순간 애호박 농사를 하다가 담배 농사로 전향했다던 간동면 농부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농사를 포기하고 타지로 나가야 하나 고민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이 등록금조차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진짜 힘들었다”고 했다. 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도 눈에 밟혔다. 감사한 제안에 선뜻 ‘그러겠다’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갈수록 농사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나는 과연 귀농을 할 수 있을까.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제시할 농촌의 모습은 지금보다 나아지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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