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애도의 슬픔을 감당해야 할까

김승희 시인
[김승희의 시심연심] 우리는 어떻게 애도의 슬픔을 감당해야 할까

어느 나라에서는 사람은 세 번에 걸쳐 죽는대요
첫 번째는 심장이 멈출 때
두 번째는 흙 속에 몸을 매장할 때
세 번째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날 때

사람은 쉽게 죽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봐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요
심장도 많이 필요하고요
그때까지는 살아있는 거라고요

공갈 젖꼭지 같은 것은 아니고요
아무 생각 없을 때도 몸에서 계속 자라나는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이나 폐처럼
그렇게 당신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면면히 자라나는 작은 영생, 잠시의 영원이라고요

-시 ‘작은 영생의 노래’,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서

김승희 시인

김승희 시인

3월 초에는 ‘끝’이라는 단어가 뼈 시리게 다가왔다. 가까이 지내던 선생님 두 분과 선배 한 명이 세상을 떠나셨다. 삶이 모래시계 안에서 쏟아지는 모래처럼 숨 막히게 느껴졌다. 모래시계에는 출구가 없다. 관 뚜껑이 닫히고 하관을 하고 흙을 뿌리고 봉분을 올리거나 대리석 뚜껑을 덮으면 장례는 끝난다. 장지에서 몸을 돌려 나올 때 우리는 새삼스러운 공포와 부딪친다. 없다! 얼마 전까지도 같이 말을 나누고 차를 마시고 함께 걷던 존재가 없다는 것! 인간은 그런 기막힌 파열의 상처를 구원하는 다른 세계를 찾으려고 발버둥 친다. 종교나 신앙은 그런 죽음의 공포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어제는 있었지만 오늘은 없는 존재. ‘없다’는 그 패닉에서 탈출하기 위해 인간은 부활이나 영생이라는 꿈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영생(永生)이란 말을 생각해본다. 시신은 썩거나 태워졌는데 무엇이 어떻게 영생한다는 것일까?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인간은 세 번에 걸쳐서 죽는다고 한다. 심장이 멈출 때, 땅속에 묻힐 때,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 임종이 끝이 아니며 기억에서부터 불가사의하게 피어오르는 새로운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애도의 꿈, 사랑의 꿈이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당신도 죽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심장이라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을 잊지 않는다면 당신의 끝은 완성될 수가 없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당신은 나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은 신이 주시는 영생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작은 영생의 시간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자라나는 손톱이나 발톱, 머리카락처럼 죽은 자의 기억은 우리의 내면에서 계속 자라난다. 그렇게 하여 내가 죽을 때까지 당신의 작은 영생은 지속된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 애도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죽은 사람을 향하던 리비도를 철회하여 자아로 전회(轉回)해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간다는 애도의 문법을 말한다. 그 애도에 실패하여 대상의 부재가 자아의 부재가 되면 우울증에 빠져 무기력, 자해, 자기 파괴를 일으킨다고 한다. 데리다는 죽은 자를 기억 속에 보존함으로써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슬픔을 극복해간다고 말한다. 그는 프로이트식 애도에 반대하면서 고인을 영원히 내 안에서 기억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라고 한다. 어머니를 잃고 <애도 일기>를 쓴 롤랑 바르트 역시 끝없이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것, 그 안에서 타자를 위한 작은 쪽지의 기념비를 만드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애도라고 말한다.

나는 프로이트식 애도의 문법에 수긍하면서도 바르트나 데리다의 입장에 가슴으로 공감하면서 기억이 저절로 자라나는 손톱이나 머리카락처럼 우리 내면에 ‘작은 영생’ ‘잠시의 영원’을 키운다는 것을 시 속에 써보았다. 그런 꿈조차 없다면 혼자 떠나야 하는 죽음은 얼마나 슬프고 외로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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