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6·15 남북공동선언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내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22주년이다. 우리에게 6월은 전쟁과 평화의 달이다. 1950년 6월에 6·25 전쟁이 터졌고, 그로부터 정확히 반세기 후인 2000년 6월에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6·15 공동선언이 성사된 날을 “현대사 100년, 최고의 날”이라고 했다. 임동원 통일부장관은 6·15 공동선언으로 “민족의 희망을 세웠다”고 했다.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6·25 전쟁은 1953년에 정전됐지만, 국제 냉전질서의 강화로 공식 종전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이 땅은 분단의 고착화와 전쟁체제의 강화로 신음했다. 정전체제는 우리에게 ‘적대와 전쟁’ 정체성을 강요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숙명으로 알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을 통해 우리의 ‘적대와 전쟁’의 정체성을 ‘화해와 평화’의 정체성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역사가‘6·15 이전’과 ‘6·15 이후’로 나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전설적인 외교 담당 기자였던 돈 오버도퍼는 <두 개의 코리아> 2002년 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시발점으로 남북한은 사상 처음으로 한민족 전체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오버도퍼의 평가가 당신의 생각과 같음을 확인했다. 6·15 공동선언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땅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결정’하는 위대한 ‘6·15 시대’의 개막 선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6·25 전쟁 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전황의 변화와 사상의 대립으로 인한 반복적인 살육전 등으로 가득 찬 6·25 전쟁에서 살아남은 후, “평생 민족의 화해와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민족의 통일 없이는 절대로 진정한 민족의 평화와 번영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기꺼이 자신을 “진보적인 통일론자이고 적극적인 화해론자”로 규정했고, 평생 그에 합당한 행동과 정책을 추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은 “우리 자신의 권리”이며 “평화만이 희망이자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6·15 공동선언은 한반도에서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 번영을 여는 열쇠였고, 햇볕정책은 대북·통일정책을 넘어 외교, 안보, 경제 분야 등의 정책 모두를 아우르는 것으로서 나라와 민족의 ‘21세기 대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대전략은 눈부신 성과를 냈다.

그간 세월이 흘러 북한에서도 지도자가 바뀌고 남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지도자와 정부가 몇 번씩 바뀌었다. 그리고 이 국가들의 한반도 정책도 시계추처럼 좌우로 혹은 앞뒤로 흔들렸다. 6·25 전쟁의 종전과 평화정착의 희망이 실종되고, 상대방 국가들에 대한 불신만 깊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중 간에 신냉전 구조가 형성되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비핵화는 더욱 갈 길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6·15 공동선언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희생물이 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반도 상황이 군사적 긴장 고조와 전쟁 위협, 그것도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6·15 공동선언의 정신과 목표는 그만큼 더 절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없애고 민족화해, 평화통일과 평화번영을 이뤄내려는 6·15 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이 존재하는 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래 비전’이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는 외교를 잘해야 먹고사는 나라다.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을 소원케 해서는 안 된다’는 외교의 지혜를 강조했고 또 집권 5년 동안 그것을 실천했다. 미·중 양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지금, 만일 우리 정부가 양국에 대한 균형전략을 버리고 미국만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근시안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중수교 30년 동안 눈부시게 성장하여 지금 우리가 세계적으로 누리고 있는 경제·기술적 위상은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고, 한반도 통일과 평화는 그만큼 더 요원해질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하시기 얼마 전 필자에게 “역사는 확신을 갖고 보되, 길게 보는 것이 좋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짧게 보면 당장의 현실은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난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일과 평화, 번영의 ‘6·15 비전’을 믿고, 그것을 현재에 가져와 현재를 재구성하여 미래의 비전 속에서 현재를 살아낸다면, 결국 현재의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김대중 대통령님이 그립고, 6·15 공동선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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