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

10년 전 대학에서 만난 K는 ‘전도유망한 학과’에 입학했다. 취업난이 극심한 때였지만 이공계인 K의 전공은 취업과 직접 연계되어 특화된 분야였다. 예정대로라면 그도 졸업 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직행할 터였다. 어느 날 선배들의 모교 방문 행사가 있었다. 그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나러 나갔다. 말쑥한 슈트 차림일까, 아니면 실리콘 밸리의 개발자들처럼 낡은 티셔츠에 고급 시계를 장착한 모습일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엉뚱하게도 떡볶이 집, 치킨 집 사장이 되어 돌아온 선배들을 만났던 것이다. 좁은 취업문은 뚫고 들어갔지만, 오래 버티진 못했다. 회사는 자기가 뽑은 인재들을 재교육을 통해 계속 성장하도록 투자하는 대신, 새롭게 혁신된 인재로 갈아치웠다. 물갈이는 파도처럼 이뤄졌다. 그 파도에 밀려 나와, 모은 돈에 대출 보태 ‘청년 창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치킨 같은 소규모 자영업이었던 것이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라는 특명을 내렸을 때, 나는 K를 떠올렸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기초과학 토대 강화와는 무관한, 삼성 같은 대기업에 빨리 빨리 필요 인력을 조달하라는 ‘기업 주문형 인력 공급’ 요구였다. 교육의 목적은 ‘산업 인재’ 육성이며 교육부는 ‘경제 부처’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생각에 교육계와 시민들은 경악했지만, ‘자원빈국론’과 결합한 ‘인재양성론’은 지난 모든 정권에서 교육 정책의 일관된 기조였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인재’의 의미다. 과거 ‘인재’가 주로 정·관계, 법조계로 충원되는 지배층의 관료 엘리트로 표상됐다면, 신자유주의 정부 이후로는 ‘기업가형 인재’로, 공교육이 목표하는 인재상이 달라졌다.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이나 노무현 정부의 ‘벤처 인재’, 박근혜 정부의 ‘창의 인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재’라 불리는 엘리트 양성과 ‘인력’이라 불리는 노동력 공급은 근대 국가교육의 기본 목표였는데, 오늘날에는 노동자들도 인재가 되고 기업가 정신을 갖도록 교육받는다. 자연과 인간의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쥐어짜내어 성장하는 강도 높은 추출경제가 그만큼 고강도의 자기혁신과 자기계발을 통한 추출노동과 추출교육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육담론에서 역량의 추출은 종종 무한한 자기성장의 미담으로 둔갑한다. 학생들 각자가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여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창조적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교사들에겐 미담이지만 학생들에겐 괴담이다. 그런 인재들이 현실에서 받는 대접은 어떠한가. 지금 기업은 신기술로 제품의 사용주기를 단축시키는 ‘계획적 진부화’를 상품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한다. ‘파괴적 혁신’은 인재도 빠른 속도로 기업의 쓰레기로 만든다.

반도체 산업에 매년 1600여명이 필요한데 현재 반도체 학과 졸업생은 600여명에 지나지 않으니 그만큼 정원(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는 늘 맞는 말처럼 들린다. 수학으로 위장된 수요공급의 셈법은 여기에 작동하는 권력관계를 교묘하게 은폐한다. 교육을 시장을 위한 ‘적시생산체제’로 만들라는 기업의 요구가 수용된다는 것 자체가, 지금 한국 사회 권력구조에서 기업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저항해야 할 대학도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어 앞장서서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한다. 2000년대 초반 독일에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할 때 비슷한 기업의 요구가 있었다. 독일 대학생을 뽑으면 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하고,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막대하여 손실이 크다며 기업이 정부 로비를 통해 대학 등록금 도입 등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에 개입을 시도한 것이다. 그때 독일 대학과 시민들이 이런 플래카드를 내걸고 싸웠던 기억이 난다. “기업에 필요한 교육비는 기업이 대라, 국민이 필요한 교육에는 국민이 돈을 낸다.”

‘인재 교육’이란 소수의 엘리트를 키워 그들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도록 하는 반민주주의적 교육 이념으로 기능했고, 최근에는 능력주의로 진화했다. 그동안 우리는 인재(人才)가 인재(人災)가 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한 명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 내세웠던 삼성의 인재경영 모토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저 글귀를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청 로비에서 본 적이 있다. 그 글귀 아래에 어느 청소년이 달아놓았던 낙서 댓글도 기억한다. “걔가 싫다면?”

K는 어떻게 되었을까? ‘반도체 인재’의 미래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대학이 기업에 납품한 ‘인재’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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