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왜 자꾸 변신할까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패스트푸드 대명사 햄버거에는 혁신이 숨어 있다. 독일계 이민자 음식이던 햄버거는 19세기 후반 철도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때 등장했다. 1분 1초를 중시하는 철도기업은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는 기업문화를 확산시켰다. 접시에 나오던 햄버거가 샌드위치처럼 간편식으로 바뀐 것도 이때쯤이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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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햄버거는 더 진화했다. 1940년 맥도널드 형제는 드라이브스루 햄버거점을 열고 최초로 헨리 포드의 대량 생산 시스템을 음식점에 도입했다. 이어 가게를 인수한 레이 크록은 한 술 더 떠 잠수함 주방을 벤치마킹하며 조리과정은 물론 접객 서비스까지 표준화해 통제했다. 미국을 세운 건 독립의 아버지들이지만 미국적 분위기를 만든 것은 맥도널드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세기가 바뀌면서 햄버거 혁신은 기업만의 몫이 아니었다. 더 이상 대중들은 고립되고 수동적 객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성비 대신 SNS에 올릴 만한 햄버거를 원했다. 2004년 미국 뉴욕에서 등장한 쉐이크쉑(쉑쉑)버거가 그중의 하나였다. 뉴욕 매디슨공원 재건 비용 마련을 위한 자선사업으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기업이 고안한 햄버거였다. 개념뿐 아니라 맛도 달랐다. 쉑쉑은 기존 햄버거 번보다 씹는 식감이 좋은 감자가루를 넣은 번을 썼다. 소고기도 20가지 이상의 다양한 부위를 사용했다. 매디슨 공원의 풍경과 어울리는 매장 외관도 근사했다. 모든 것이 ‘인스타그래머블’했다.

쉑쉑버거는 유명 셰프들과 협업을 하는데 이탈리아 마시모 보투라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큼직한 미국식 햄버거 대신에 지름 6㎝의 앙증맞은 에밀리아 햄버거를 선보였다. 핵심은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뿌린 지방 10% 미만의 소고기 패티와 발사믹으로 만든 마요네즈였다.

2012년 라스베이거스에 문을 연 고든 램지 버거는 고급화 전략을 썼다. 최고가인 777달러 버거는 최고급 와규 패티에 랍스터, 거위간 그리고 100년 된 발사믹을 뿌려준다. 따분한 구성으로 가격만 올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고든 램지 버거의 빵은 천연발효 방식인 사워 도를, 패티도 씹는 질감을 위해 소고기 여러 부위를 모아서 쓴다. 소스는 공장식이 아니라 수제 소스다. 고가인데도 시장에서 통하는 이유일 것이다.

올해 초 구찌 오스테리아와 고든램지 버거가 한국에서 문을 열었는데 문전성시다. 고든 램지 버거는 아시아 최초이고, 구찌 오스테리아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 두번째다. 최신 트렌드로 무장한 햄버거 매장이 한국에 빠르게 상륙한 것은 우리나라가 오프라인의 경험을 SNS에 빠르게 올리고 확산시키는 혁신적인 디지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음식이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SNS용 디지털 데이터의 오프라인 버전이다. 음식을 만드는 공급자뿐 아니라 음식 소비자도 혁신적이어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허름한 노포를 즐겨 찾는 이에게는 조금 버거운 신세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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