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월급봉투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2014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4만7000원을 담은 노란봉투 4만7000여개를 받았다.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파업으로 회사와 경찰, 그리고 법원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결정했다.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싸움이 계속되었지만 생활고와 엄청난 손해배상액에 대한 부담이 쌓여 33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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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식을 접한 배춘환님은 한 언론사에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을 보냈다. “해고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보냅니다. 47억원…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보내는 ‘노란봉투’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1년에는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내려가는 ‘희망버스’가 있었다. 동료들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SNS를 통해 김진숙의 농성 소식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희망버스로 이어지자 노동조합도 놀랐고, 김진숙도 놀랐다. 정부는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아대고 방패를 휘둘렀지만, 희망버스로 모인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동이 터오는 아침이 되자 김진숙은 “살다보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요”라며 웃었고, 사람들은 방패에 터진 얼굴로, 최루액에 부풀어오른 살갗으로 노래하며 춤을 췄다.

살다보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더라. 싸우는 사람들이 아무리 외쳐도 투명 벽에 둘러싸여 어떤 목소리도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은 시간들에 지칠 때쯤, 불쑥 누군가가 응답하는 때가 있다. 노란봉투를 제안한 배춘환님은 자신의 행위를 ‘10만분의 1만큼의 대답’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요청하며, 목소리에 응답하며 다른 시민이 된다.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묻기 위한 응답의 릴레이라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6월부터 스스로 철판을 용접해 만든 1m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탱크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며 파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2016년 조선업 불황 시기부터 30%가량 하락된 임금에 대한 회복을 요구한다. 경제계는 내년 최저임금 440원 인상을 놓고 반발하고, 윤석열 정부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와중에, 하청노동자들의 30% 임금 인상 요구는 경제위기를 초래할 만큼 과도한 요구일까. 아니면 조선업 위기 시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은 희생을 감수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일까.

파업이 계속되니 하청노동자들의 생활고가 심하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이러한 사정을 너무 잘 알기에 공권력 투입 운운하며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 다가오는 14일은 하청노동자들의 월급날이다. 0원이 찍힌 명세서를 받는 날, 시민들이 이들의 월급봉투를 채워주자는 캠페인이 한창이다. 1만명의 시민이 1만원씩 연대를 하면 파업 중인 하청노동자들에게 50만원의 월급을 보낼 수 있다(우리은행 1005-603-022783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동조합). 사측이 50만원을 주면 화가 나지만, 시민들이 50만원을 채워주면 웃음이 나지 않을까.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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