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공포, 번민, 즐거움, 우울, 분노, 호의, 독기, 후회, 짜증, 냉혹, 회한, 자비, 반감, 증오, 난폭, 혐오감, 소박, 인정, 애정, 두려움, 잔혹함, 망상, 이성, 용기, 기이, 욕망. 이는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는 단어들을 골라 적어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골짜기로 굴러떨어진 주인공. “교활한 술책으로 나를 유혹하여 살인을 저지르게 하고, 고자질하는 목소리로 나를 교수대로 인도한 그 고양이” 때문에 내일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주인공. 순진한 모범생에서 사형수가 되어버린 그 주인공인 ‘나’의 마음을 구성했던 성분들이다. <검은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소설이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괜찮지만 그 내면에는 저런 복잡한 심성이 마구 들끓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런 감정의 조각들로 만든 뗏목을 타고 이 세상의 소용돌이를 건너가는 중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공간과 시간의 표면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 현상의 배후에 잠복하는 복잡한 사연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대지와 사람 간의 관계이다. 사람과 사람의 거래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다. 고구마일 줄 알았는데 쑥 뽑고 보니 감자였다,라는 건 다반사다.
‘나’의 심정에 그대로 포갤 수는 없겠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웬만한 감정의 세례는 나도 받았다. 어떤 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더러 상반되는 저것들은 일층과 이층에 따로따로 사는 게 아니라 안방과 건넌방에 있다가 거실에서 너무도 쉽게 뒤섞인다. 우리가 살균된 세상에서 살 수 없듯, 저런 감정들이 없는 곳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는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이다. 가사가 착착 입에 감기는 건 내 마음의 어느 한구석과 궁합이 딱딱 들어맞기 때문일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지나간 것들은 팔다리가 없다. 그중에서도 더럽고 깜냥도 못 되는 것들은 내 안온한 일상을 한 뼘도 침범할 수가 없다. 그대는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