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과 탈축산을 함께 말하는 이유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서로 다른 운동이 만나는 순간을 눈여겨보려 한다.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함께 떠올리게 만든 책은 <짐을 끄는 짐승들>이었다. 이 책의 작가 슈나우라 테일러는 질문한다. “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동물산업 곳곳에 장애를 가진 몸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또한 동물의 몸이 오늘날 미국에서 장애를 가진 몸과 마음이 억압당하는 방식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만약 동물을 둘러싼 억압과 장애를 둘러싼 억압이 서로 얽혀 있다면 해방의 길 역시 그렇지 않을까?” 언뜻 멀게 느껴지는 두 개의 다른 해방을 따로따로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쓰이는 중이다. 비장애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가 닮아 있고 뒤엉켜 있음을, 두 전선의 시급함과 중대함에 관해서 섣불리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음을 배운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물권 운동과 기후위기 운동의 만남이다. 날씨와 사람, 사람과 동물, 동물과 날씨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의 물난리들을 기억한다. 2020년 전남 구례에서 홍수를 피해 우사를 탈출한 소가 있었다. 지붕 위로 올라간 소의 이미지란 몹시 생경하고도 불안했다. 뉴스를 본 대다수가 소의 안전을 바랐을 것 같다.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구조가 이루어졌지만 소는 이젠 죽고 없다. 이 시대의 소들은 축산업이라는 시설 안에서 수명보다 훨씬 적은 삶을 살다가 도축된다. 그런 소가 한 해에만 80만명이 넘는다. 비거니즘 잡지 ‘물결’이 창간된 건 그즈음의 일이다. 비인간동물도 기후당사자라는 사실에 ‘물결’은 주목한다.

비거니즘·기후운동 뜻깊은 만남

한편 2022년 여름에도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물난리로 인해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과 그의 가족, 세 명이 사망했다. 기후재난은 모두의 삶에 드리워질 테지만 누군가는 특히 더 취약하게 겪는다. 불평등한 사회 지형은 급변하는 날씨 아래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이에 국가의 책임이 있는가? 물론이다. 침수위험 가구를 관리했어야 할 행정안전부와 지자체는 그러나 책임을 회피했다. 이 흐름은 슬프게도 익숙하다. 막을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아 일어난 재난, 취약한 이의 사망, 국가의 의무 방기로 이어지는 흐름. 기후 재난이 더 잦아질 세계에 살며 우리는 이 죽음들로부터 무엇을 사무치게 반성하는가.

2022년 12월21일. 국회에서 대담이 열렸다. 잡지 ‘물결’을 만드는 동물해방물결의 팀원들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공동으로 주최한 대담이었다. 함박눈이 펄펄 오던 날 수십 명의 시민이 대담을 듣기 위해 국회로 출입했다. 이 자리는 선례 없는 일을 최초로 진행한 활동가들과 국회의원의 대화로 꽉 채워졌다. 지난해 동물해방물결은 국내 최초로 소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한 명의 소도 해방되지 않으면 어떤 소도 해방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난해 장혜영 의원실은 국내 최초로 기후국감을 진행했다. 반지하 홍수 피해로 사망한 이들의 영정을 마주하고 온 장 의원이 기후정치가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안다고 착각했던 일을, 진짜로 알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대담에서 그는 말했다. 21대 국회 300개의 의원실 중 적어도 한 곳은 기후위기 상황실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경각심이 그를 기후국감으로 이끌었다. 탄소배출 감소와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들이 실제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책임자들의 코앞에다 대고 묻고 감시하는 국감이었다. ‘물결’은 축산업이 탄소배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그에 앞서 근본적인 착취에 대한 반대를 힘주어 강조했다. 축산업의 착취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뿐 아니라 기후당사자이기도 한 동물의 고통 또한 극대화하므로.

기후와 인간과 동물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탈석탄과 탈축산을 동시에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들은 화석연료 중심의 구조로부터,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신화로부터, 만물을 인간중심적으로 변형하고 착취해온 과거로부터 전환하려 한다. 전환을 위한 기후정치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기후 정치인과 기후 유권자 그리고 기후 의제다. 구체적인 기후 의제를 규정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정치는 지금껏 충분하지 않았다.

관심이 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비거니즘의 정치의제화는 이제 겨우 출발선 위에 서 있다. 이 문제를 소중히 여기는 기후 정치인과 유권자가 늘수록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결국 국회로 어떤 사람을 보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대담에 참석한 정치인은 한 명뿐이었다. 그래도 이 대담이 열린 장소가 국회라는 점에서 나는 희망을 느낀다. 그것은 입법기관 중 한 사람이 진정으로 듣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비거니즘과 기후 운동의 첫 만남이 국회의 역사에 남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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