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통치의 주술, 그 초라한 성적표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넘겼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0%에 턱걸이하고 있고, 부정평가는 60% 수준을 넘나들고 있다. 1주년 평가에 대한 불편함은 일방적 선동이 노골적인 행태들에서 역설적으로 확인된다. 여당이나 관변단체들의 길거리 현수막은 물론 주요 경제단체들까지 나서서 방미 성공을 찬양하는 언론 광고를 도배하는 모양새가 꼭 1970~19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서 유행하던 여론 동원의 기시감을 준다. 보여주기식 여론동원만으로 부족했던지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이전 정권 혹은 야당의 잘못이나 시간부족을 1주년 평가의 주된 배경으로 삼거나 인사권으로 엄포 놓는 행태가 안쓰러울 정도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헌정의 권력구조에서 제도적 취약점은 국가 권력의 임기제를 통한 민심의 정치투입 구조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대의기관인 국회를 단원제로 하고, 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길게 설정해 사회의 다양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회 구성에 반영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은 5년 단임이어서 국민의 입법권과 행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주기적으로 연동되지 못하는 구조이다. 임기제를 통한 민주공화적 헌정체계의 구축에 철저했던 미국에서 2년 단위로 국민 대표들을 심판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미국 연방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는 한편 하원의원 임기를 2년으로 하고 상원의원 임기는 6년으로 하면서도 2년마다 3분의 1씩 개임되도록 순차적 구성방식을 택하고 있다. 또한 2년마다 치러지는 의회선거는 임기 4년인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의미를 부가적으로 가지게 된다. 2년 주기로 민심의 향배에 따라 권력구조에 무형적 변화를 투입해 주권자의 평가에 따라 국정의 민주적 대응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구조인 것이다.

우리 헌정에서 임기제를 통한 공화구조가 불충분하더라도 국민주권 원리에 따라 주권자의 준엄한 1주년 평가를 대통령이 겸허히 수용해야 할 헌법적 책무는 변할 수 없다. 따라서 초라한 취임 1주년 성적표를 받아든 윤 대통령은 시대착오적 여론동원이 아닌 헌법정신에 따라 변화된 민심의 향배를 살펴 낙제점인 국정기조를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1주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률배반적인 이념통치의 부작용 탓이 크다. 윤 대통령은 40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민주화의 성과를 과소평가하면서 정체성이 불분명한 ‘자유론’으로 상징되는 이념통치로 국정난맥을 초래했다. 원래 이념을 내세우는 정치는 진보진영의 특징이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정치로의 전환은 ‘87년 체제’의 당면과제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말로는 이념정치의 종식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강력하면서도 퇴행적인 이념통치를 구사해 온 과오가 크다. 86세대 운동권 이념의 극복을 내세우면서 헌법이 폐기하고 있는 친기업·반노동의 이념과 분단모순을 극대화한 색깔론을 부활시킨 퇴행적 이념통치로 일관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통제하는 헌법 원리인 법치는 억압적 사회통제를 위한 도구로 격하되고, 노조·언론·시민단체에 대한 편향적인 낙인찍기와 선택적 공권력의 발동은 민주공화제의 자치적 기초를 무너뜨리고 있다. 탈원전 이념만이 에너지 정책의 지상과제일 수는 없더라도 막무가내로 ‘탈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오로지 검찰과 사적 인연만이 도드라진 인사는 권력기관의 사유화라는 퇴행을 낳았고, 무죄추정의 헌법원칙은 제쳐둔 채 죄없는 사람은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의 검찰지상주의는 전근대적 이념통치의 하부구조를 형성하게 했다.

윤 대통령은 비현실적인 가치외교라는 이념노선을 표방하면서 친미·친일정책을 급진적으로 실행했다. 이로 인해 수출주도형 국민경제는 역대급 위기에 직면하고, 70년째 정전상태인 한반도는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사법주권과 피해자 중심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거스르는 굴욕외교에서 도대체 우리가 어떤 실리라도 얻었는가?

국민의 냉엄한 평가를 가짜뉴스와 진영논리에 오염된 것으로 치부하는 한 윤 대통령의 미래는 초라한 1주년 성적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오로지 여와 야, 기업과 노조, 도시와 농어촌, 수도권과 지방이 공영공생하는 공존의 질서 속에서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안전과 자유와 행복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지상과제이다. 오도된 이념통치의 주술을 풀고, 민주공화 헌법의 상생원리에 따라 국민의 자존과 국가이익을 교차시키는 실용정치로의 전환만이 윤 대통령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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