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탈지구화’의 시대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탈지구화’의 시대

지구화는 반드시
지구 차원의 평화 체제와
함께 가게 되어 있다
강대국들끼리 갈등이
자주 터진다면,
지구화가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을
기점으로 어쩌면
예민하고 복잡한 전쟁이
곳곳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힘 잃은 지구화는
‘탈지구화’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지구화는 돌이킬 수 없이
상처를 입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온 세계가 숨죽이고 가자지구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지금 세계가, 또 지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좀 큰 그림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온 세계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로 오가는 단어는 ‘탈지구화 deglobalization’이다. 이 ‘탈지구화’라는 말은 2020년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어휘이지만, 특히 작년의 우크라이나 전쟁 및 미국·중국 무역 갈등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지난 30년간 마치 ‘역사의 종말’처럼 확고한 위치를 다져왔던 지구화가 퇴조로 들어서고 있다는 증후가 사방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여러 증후 가운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바로 평화의 시대의 종말 그리고 이어서 지구화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사건으로 두드러져 보인다.

지구화라는 것은 단순히 무역과 교류가 늘어난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구 위의 여러 다른 나라가 경제와 산업에 있어서 상호의존이 깊어진다는 것이 우선적인 의미이다. 완성된 재화와 서비스만 완제품의 형태로 오가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의 중간을 형성하는 산업의 가치사슬 자체가 국경선을 넘어서 형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오고가게 되는 것을 뜻한다. 즉 이런저런 나라의 국경선을 넘어서는, 글자 그대로 ‘지구적 경제’가 형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코로나 전후로 국제 정치 크게 변화

그렇기 때문에 지구화는 반드시 지구적 차원의 평화 체제와 함께 가게 되어 있다. 어쩌다 국지전이 한두 군데에서 짧게 벌어지는 것은 몰라도, 전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끼리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굵직한 갈등이 툭하면 터진다면, 이러한 불안정성 속에서 지구화가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제관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무얼 믿고 다른 나라에 공장을 세우겠으며, 무얼 믿고 다른 나라에 직접 투자를 하겠는가?

따라서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나타났던 가장 큰 규모의 지구화 시대는 또한 국제적인 평화체제의 시기로 유명한 시대이기도 하다. 먼저 19세기의 경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에서 1차대전이 시작되는 1914년까지의 기간이 바로 최초의 지구화라고 불리는 19세기 자유무역 체제가 형성되었던 시기다. 그런데 이 시기는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 큰 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기이기도 하며, 국제정치학에서는 이 시기를 “유럽 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라고도 부른다. 유명한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이 시기를 “백년 평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폴라니에 따르면, 특히 이 시기에 중요했던 평화의 담지자는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국제적인 금융집단이었다고 한다. 지구화가 한창 진행 중인데 큰 전쟁이라도 나면 산통 깨지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잖은가. 그런데 전쟁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전쟁을 하려는 나라들은 로스차일드와 같은 국제적인 대형 금융집단에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로스차일드는 그 영향력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갈등을 중재하는 등으로 평화를 달성하는 적극적 노력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다음 시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제2차 지구화”의 시대이다. 공산주의 진영이 몰락한 1989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는 2022년까지 33년의 기간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세계 경제는 무역, 산업, 투자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하나로 연결되었고 토머스 프리드먼 같은 언론인은 이를 두고 “지구가 평평해졌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시대를 국제정치학에서는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의 시대라고도 한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을 최고의 강대국으로 삼는 1극 체제가 형성되면서, 냉전시대와 달리 군비 증강에 큰돈을 쏟을 필요가 크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30년 정도의 기간 동안은 이렇다할 만한 전쟁이 없었다. 물론 전쟁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첫째, 코소보 전쟁처럼 작은 지역에서의 내전으로서 큰 규모로 비화될 위험이 없는 국지전이었거나, 둘째,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미국이 지구적 시스템의 관리 차원에서 벌였던 군사 행동에 불과했다. 즉 지정학적으로 아주 예민한 지역에서 주요 강대국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전쟁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맥락과 그 심각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서 국제정치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분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다음부터 국제정치는 더 이상 미국 한 나라의 독무대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 갈등과 대립이라는 구도로 다시 짜이기 시작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다음에는 급기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첫째, 러시아라는 무시 못할 강대국이, 둘째, NATO와 바로 맞붙는 아주 예민한 지점인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지난 30년간 볼 수 없었던 양상의 전쟁이었다고 하겠다. 여기서부터 그림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가 미국과 유럽을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한편으로 하는 대리전 양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갈등이 벌어진 가자지구가 아주 예민한 핫스폿이며, 미국과 서방은 이스라엘 건국의 원죄가 있는 세력인지라 이스라엘 편으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지금 중국이 ‘두 개의 나라’라는 노선을 들고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려 하고 있으며, 러시아-이란으로 이어지는 대 서방 세력 구축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시작의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지금 전 세계에는 이와 비슷한 성격의 갈등과 전쟁이 터질 지역들 몇 군데가 대기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전쟁 직전의 상황에 있다. 코소보와 세르비아 또한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수단에서의 내전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 지역들 모두가 지정학적으로 아주 예민한 곳인 데다 미국과 중국을 정점으로 하여 대립 세력들이 형성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적 시스템 위기 신호탄 우려

그러면 이렇게 평화가 사라지면서 경제적 차원에서의 ‘지구화’도 퇴조를 겪는 일들이 벌어질까? 얼마전 웰스 파고 그룹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면, ‘지구화의 퇴조’는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적 재화 및 서비스 무역 총량을 전 세계 GDP로 나눈 숫자는 실제로 1980년대 중반부터 2007년까지 실로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그 이후에는 장기적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여왔다. 이는 해외 직접투자의 퇴조와도 궤를 같이한다. 세계 경제에서 해외 직접투자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2007년 정도에 정점에 달하고 그 뒤로는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

지금 막 본격적으로 사태가 진행되기 시작했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어쩌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지난 30년 동안 벌어졌던 국제 분쟁과는 전혀 유형이 다른 두 번째 전쟁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어쩌면 또 마찬가지로 아주 예민하고 복잡한 전쟁이 여기저기에서 이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힘을 잃은 지구화는 정말로 그러면 ‘탈지구화’의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주 비관적으로 보아, 이게 1930년대와 같은 장기적인 지구적 시스템의 위기가 시작되는 신호라고 보는 이들까지 있다.

아무쪼록 가자지구에서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고 조속히 사태가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구화는 돌이킬 수 없이 상처를 입었다. 이상(李箱) 김해경의 시구절이다. “능금 한 알이 추락하였다/ 지구는 부서질 만큼 상하였다/ 이후 어떠한 정신도 발아하지 아니한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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