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들의 학생이다

노들에 철학 전하러 온 사람이지만
이제는 노들로부터
철학을 겨누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 학교의 교사였지만
이 학교에서 배운 학생이다

지난 금요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노들장애인야학(노들)에 다니는 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위한 후원 행사가 열렸다. 우리는 이 행사를 ‘평등한 밥상’이라고 부른다. 정부가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해주면 좋겠지만 노들은 정규학교가 아니어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노들은 정규학교가 장애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학교다. 정규학교에서 배제해놓고, 정규학교가 아닌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급식에서 배제하는 셈이다. ‘평등한 밥상’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기울어진 밥상을 적어도 이 학교에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매년 이맘때면 교사들 모두가 후원 티켓 판매에 나선다. 나 역시 1년간 쌓아둔 우정이든, 사랑이든, 대부분의 신용을 여기에 쓴다. 이상한 말이지만 이때는 내 어깨가 활짝 펴지는 때이기도 하다. 티켓을 내밀며 하는 말은 ‘부탁드립니다’인데 태도는 ‘내가 이래봬도 노들 사람이라고’이다. 그만큼 노들은 내게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이 학교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장애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름을 모를 수 없을 만큼 유명한 학교지만, 내가 느끼는 자랑스러움을 이 이름만으로는 전할 수가 없다. 이 학교는 그야말로 보물 광산이다. 억압과 차별, 추방과 배제의 고통 속에서 다져진 이야기들이 고온고압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처럼 매장돼 있다. 10년 전 홍은전 작가가 이 원석들을 뛰어난 세공술로 다듬어 <노란들판의 꿈>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30주년을 기념해 더욱 특별한 책이 나왔다. <노들바람>(봄날의 책). 지난 30년간 노들의 소식지에 실렸던 2000편이 넘는 글들 중 수십 편을 골라 묶은 것이다. 노들에 매장돼 있던 원석 한 자루를 그대로 꺼내놓은 셈이다.

첫 번째 글은 27년 전 학생의 사랑 고백이다. “선생님! 난 아마도 당신들을 평생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 글은 별과 일깨움에 관한 아름다운 단락을 담고 있다. 작업장과 기숙사만을 오가던 학생이 평생 처음으로 모꼬지를 체험한 이야기. 그때 그는 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내게 이 이야기는 철학자 칸트의 것보다 위대하게 다가온다. 칸트는 별이 빛나는 하늘에 경탄하면서도 내 안의 도덕률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 학생에게 그날의 별은 마음속 도덕률, 즉 장애인들에게 무능과 불가능을 주입해왔던 우리시대 도덕률을 무너뜨릴 만큼 찬란했다(이후 그는 기숙사를 나와 자립생활에 도전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은 지난해 지하철에서 오체투지 투쟁을 했던 학생이 쓴 것이다. “팔과 다리를 바둥거리며 배를 밀고”가는 것이 “한 살배기 아가의 배밀이보다 못했”지만 이때 “깊게 묻어두고 싶었던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시설에서 물을 주지 않아 “욕실로 기어가서 대야에 담긴 물을 더위 먹은 개처럼 핥아먹”었던 일, 누군가 떨어져 죽으며 내지르던 비명을 듣고 자신 또한 “그렇게 죽기를 소망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객실을 기어갔다고 썼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비장애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참았다. 약해 보일까봐, 내가 힘들어서 우는 걸로 생각할까봐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 책에는 눈물과 분노만 있는 게 아니다. 발냄새가 난다고, 자기도 무좀에 걸렸다고 자랑하는 학생도 있다. 걷지 않으니 그런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다고. 발을 씻고 베이비파우더까지 뿌렸다며 그는 자랑스레 말한다. “아하, 나도 그런 거에 걸리는구나. 다른 사람들의 것과 같구나. 내 발은 발이 아닌 줄 알았다. 장애인 발도 발이다!” 글을 읽다가 배꼽을 잡으면서도 이것도 노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배움이고 이것도 투쟁이다.

이 학교가 배출한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30년 전의 교사는 학생들의 삶을 마주하면 “가슴에 뭔가 자꾸 고여서 술을 들이켜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20년 전의 교사는 “삶이 힘들고 고단할 때 하늘에서 돌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면서도 “너무 많은 돌을 맞고 살아서인지” 해볼 만하다고, 아픔의 원인을 찾아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15년 전의 교사는 건물에서 쫓겨나는 마지막 날까지 수업을 하고는 노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기다려, 다시 돌아올 땐, 당당한 권리로서의 교실을 만들어올게. 잘 싸우길 빌어줘.” 지난해의 교사는 “나의 아름다운 일상”이 장애인들을 “배제한 채 이루어져 있다는 감각이 스칠 때면 불현듯” “이 문명이 전속력으로 서늘해진다”고 썼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노들에 철학을 전하러 온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노들로부터 철학을 겨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이 학교의 산물이다. 나는 이 학교의 교사였지만 이 학교에서 배운 학생이다. 노들야학 포에버!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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