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의 ‘슬픈 정념’이 몰려온다

홍기빈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유럽과 남미에서 극우파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지난 11월19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왼쪽 사진)가 당선됐고, 11월22일 네덜란드 하원 선거에서는 헤이르트 빌더르스(오른쪽)가 이끄는 극우정당 자유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다. AP·AFP연합뉴스

유럽과 남미에서 극우파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지난 11월19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왼쪽 사진)가 당선됐고, 11월22일 네덜란드 하원 선거에서는 헤이르트 빌더르스(오른쪽)가 이끄는 극우정당 자유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다. AP·AFP연합뉴스

지금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극우파 정치의 바람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질서가 태어나지 않는 가운데, 세상 에너지가 ‘슬픈 정념’으로 변질되고 썩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대로, ‘낡은 것은 죽었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고 있는 순간, 그때가 위기’인 셈이다

전 세계, 특히 유럽과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파 정당의 약진에 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한다.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지는지,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지게 될지에 대해 좀 더 긴 역사적 시각에서 그리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부족한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지난 11월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되었다. 아르헨티나 하면 떠오르는 두 단어, 즉 페론주의 이후의 좌파 포퓰리즘 정치 그리고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경제위기를 밀레이는 연결시켰다. 현재 경제위기의 모든 책임을 좌파 정권으로 돌리면서, 중앙은행을 폐쇄해버리고 자국 통화인 페소도 폐지하고 대신 미국 달러를 통화로 쓰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걸었다. 지난 11월22일 네덜란드의 하원 선거에서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극우정당 자유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다. 빌더르스는 이민을 완전히 봉쇄하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폐쇄하고,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금지 서적으로 만들겠다는 입장을 가진 인물이다.

이 두 나라만이 아니다. 지금 유럽은 극우파의 물결이 높게 출렁이고 있고, 조만간 서유럽 대부분 나라의 정치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는 이미 극우파 정권이 들어선 상태이며, 프랑스에서는 극우파 마린 르펜 후보가 지난해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무려 득표율 41.4%를 기록한 바 있다. 심지어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도 극우정당이 제2당을 차지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극우파 독일대안당이 집권여당 사민당 지지율을 제치고 제2당 자리에 올라섰다. 스페인 역시 극우정당이 집권여당의 위치를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좀 엉뚱하다 싶지만, 지금의 극우파 창궐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한 ‘슬픈 정념’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코나투스’, 즉 버티는 힘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 힘이 발현되는 방식을 놓고서 스피노자는 사람의 정념을 ‘기쁜 정념’과 ‘슬픈 정념’ 두 가지로 나눠놓았다.

먼저 ‘기쁜 정념’이란 그 사람이 힘을 더 바깥으로 크게 뻗치게 만드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서 사랑, 희망, 자신감, 헌신, 감사 같은 감정들로서 이런 감정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넘어서서 삶을 더 크게 만드는 쪽으로 본인의 힘을 쓰게 된다. 기쁘고 좋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슬픈 정념’은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감정들이다. 공포, 질투심, 증오, 죄의식, 수치심 같은 것들이다. 이 경우에는 사람이 갖고 있는 힘이 몽땅 그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는 쪽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이런 감정과 싸우다 보면 자기 존재가 커지기는커녕 갈수록 쪼그라들고 삶은 피폐해져가다, 결국 죽어 없어지기까지 한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2010년대 좌파는 정치경제학 부재

나는 정치 운동도 ‘기쁜 정념’으로 움직이는 경우와 ‘슬픈 정념’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제도도 바꾸고 정책도 바꾸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창조해나간다는 힘으로 움직이는 운동이지만, 후자는 무엇에 대한 증오와 분노와 공포 혹은 죄의식 같은 것으로 움직이는 운동이다. 전자는 갈수록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세상도 실제로 바뀌면서 개인과 공동체가 다 풍요해지는 쪽으로 이바지하지만, 후자는 갈수록 사람들 사이에 싸움과 반목을 만들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치 운동이 ‘기쁜 정념’의 운동이냐 ‘슬픈 정념’의 운동이냐를 가르는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나는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반하여 새로운 대안적인 실천 계획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믿는다. 이게 있다면 그걸 하나하나 실현해나가면서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하나가 되는 일이 가능하지만, 그게 없으면 모여서 다른 무언가를 욕하고 저주하는 쪽으로 힘을 쓰게 되니까.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극우파 정치는 후자로 ‘슬픈 정념’의 운동에서도 가장 나쁜, 하지만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고 있다. 극우파 정치는 진보 좌파 정치의 실패로 나타난 결과이며, 그 연속선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슬픈 정념’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잠깐 시간을 돌이켜서 2010년대 초로 가본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터진 뒤 좌파에 기회가 오는 듯싶었다. 2011년에는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도 있었고,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자들’ 운동도 있었다. 또한 세계 경제위기와 함께 대규모 정치 운동이 각국에서 터져나왔고, 그리스와 스페인 등지에서는 시리자나 포데모스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좌파정당들도 나타났으며,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과 같은 기존 좌파정당 내에서 정당 혁신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치·경제 주도권과 기회는 진보와 좌파 쪽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보 좌파가 이렇다 할 만한 행동 플랜을 내놓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기본소득이라든가 생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녹색뉴딜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뾰족한 실천 운동 방침이 제시된 것도 아니었고, 당장 사람들 삶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능한 정책이나 제도가 마련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말만 많고 요란했을 뿐이고, 좀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이야기로 마이크를 잡은 개인들이 정치가·지식인 등 셀럽이 되고 출세하는 일만 벌어졌을 뿐이다.

‘화풀이’로 극우 정치인에 표 던져

진보 좌파는 왜 2010년대에 자신들에게 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린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분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치경제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나 그린뉴딜 같은 막연한 구호만으로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연구와 계획이 필요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기 쉽게 설명해서 힘을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사실상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스피노자가 말한 ‘기쁜 정념’이 사그라들게 되자 모여 있던 힘은 ‘슬픈 정념’으로 변하게 된다. 2010년대 후반이 되면 진보 좌파 운동은 사회경제적 모순이나 생태위기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백인, 남성, 이성애자 등등에게 싸움을 거는 극단적인 PC주의, 즉 ‘워키즘’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이른바 문화 전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슬픈 정념’의 운동만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 전체에 깊은 상처만 남기기 십상이다.

2023년 지금 극우파 발호의 기초가 되는 중대한 쟁점으로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이민자 문제, 둘째는 물가 인상과 생활고 문제, 셋째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반발과 저항, 넷째는 전쟁 등으로 인한 안보 불안이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 대중에게는 정말로 크고 심각한 문제이지만, 기존 정치권이나 제도에서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무책임하게 극단적인 주장과 요구를 질러대는 극우 정치인이 사람들을 끌어간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게 ‘슬픈 정념’이라는 데 있다. 극우 정치인에게 표를 준 사람들도 마음속으로는 잘 알 것이다. 저 사람들도 기존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종자들은 아니라고. 그래서 저기에 표 던져봐야 뾰족하게 뭔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냥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부정과 ‘화풀이’로 표를 던지는 것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빈사 지경에 처하여 새로운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어가는 일에 착수해야 했던 2010년대를 그냥 말잔치로 날리고, 되레 극단적 PC주의 같은 ‘슬픈 정념’만 키운 결과가 이러하다. 그래서 지금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극우파 정치 바람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질서가 태어나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세상의 에너지가 또 인류의 에너지가 ‘슬픈 정념’으로 변질되고 푹푹 썩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잘 알려진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대로 “낡은 것은 죽었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고 있는 순간, 그때가 위기”인 셈이다.

■홍기빈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극우파의 ‘슬픈 정념’이 몰려온다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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