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방탄’에 한몸 된 윤 대통령과 한동훈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앞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앞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이후 진솔한 사과와 책임 규명을 외면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며 쓴 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 그때 판단은 이랬다. “윤 대통령의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일’ 자체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틀렸다. 윤 대통령에겐 목표가 있었다. 아내를 보호하는 일이다. 1993년 문민정부 수립 이후 어떤 대통령도 감히 생각 못한 ‘가족 수사 거부’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한 보수언론 논객의 글도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윤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할 무렵 김건희 여사가 입당을 권유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가 입당하면 저를 보호해 주실 수 있나요?”(1월1일 중앙일보 최훈 칼럼)

윤 대통령은 친형 이상득 전 의원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던 전 대통령 이명박씨를 “쿨했다”고 평했다. “특검을 왜 거부하나? 죄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것”이라는 어록도 남겼다. 문제는 말 바꾸기에 있지 않다. 윤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헌법적 규범을 ‘대담하게’ 무너뜨리는 데 있다.

헌법이 불소추 특권(제84조)을 부여한 국민은 단 한 명, 현직 대통령 뿐이다. 윤 대통령은 이를 어기고, 배우자에게까지 불소추 특권을 확장하겠다고 사실상 선언했다. 대통령 취임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한다. 헌법이 규정한 권한(재의요구권·제53조)을 남용해 헌법이 규정한 원칙(법 앞의 평등·제11조)을 깨뜨린 것은 헌법이 규정한 취임선서(제69조) 위반이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악법으로 모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간략히 짚어본다.

첫째, 특별검사 추천권을 야당만 갖는다 →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여했던 국정농단 특검법도 동일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으로 판단했다.

둘째, 수사 상황이 언론에 브리핑된다 → 국정농단 특검법도 동일했다.

셋째, 총선용 특검이다 → 특검법안은 지난해 4월 국회 신속처리안건에 올랐다. 숙려기간을 채우면 2023년 말 상정된다는 사실은 여권도 알고 있었다.

넷째,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은 ‘문재인 검찰’에서 탈탈 털었다 → 김 여사 관련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것은 윤 대통령 취임 후다. 기소된 피고인들의 재판 과정에서 김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면, 왜 ‘윤석열 검찰’은 김 여사에게 무혐의 통지서를 안겨주지 못하는가.

윤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이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새해 초까지 공개된 경향신문·조선일보·MBC·중앙일보·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거부권 반대 비율은 62~70%에 이르렀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거부권 행사는 숨겨진 속내를 드러냈다. ‘내 아내는 늘 무조건 옳다’.

대통령실에선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한다고 한다. 제2부속실이나 특별감찰관은 필요하지만, 수사기관 수사와 맞바꿀 사안은 아니다. 이들 기관은 향후 발생할 비리를 예방·규제하는 기능을 가질 뿐이다.

이미 드러난 비리 의혹은 수사기관 몫이다. 대통령의 배우자라는 이유로 수사를 면할 수 있다면 재벌총수·장관·국회의원 배우자도 너나없이 그런 특권을 달라고 나설 것이다. 김 여사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선 법치를 말할 수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입당한 이상민 의원을 바라보며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입당한 이상민 의원을 바라보며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법치를 강조하고 야당 대표 방탄을 비판하던 전직 법무부 장관의 변신도 놀랍다. 한 비대위원장은 “우리(국민의힘)는 우리 할 일을, 대통령은 대통령이 할 일을 하면 된다”(지난해 12월 26일)더니 이내 ‘김건희 특검’ 대신 “도이치(모터스) 특검”이라 불렀다. 높은 사람 이름은 입에 올리지도 못하던 조선시대인가.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너무나 당연하다”(1월 5일)고 했다. 특검을 요구하는 60~70% 시민은 그가 외치는 ‘동료 시민’ 범주에서 배제됐다. 일부에서 ‘이순신’이 될 것이라 기대하던 한 위원장은 열흘 만에 ‘윤석열 아바타’로 쪼그라들었다.

“저는 김건희를 사랑합니다.” 윤 대통령이 한 모임에서, 김 여사 행보에 대해 고언을 듣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멜로드라마라면 감동적인 장면이다. 국정운영은 그러나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방탄 국정’은 윤 대통령 임기 내내 족쇄가 될 것이다.

퇴임 후에도 다르지 않을 터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재임 중 공소시효가 완성될 수 있다. 하지만 2022년 9월의 명품 백 수수 의혹은 다르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공소시효가 5년이다. 윤 대통령 퇴임 후인 2027년 9월까지 김 여사 수사가 가능하다. 설령 국민의힘이 정권을 재창출한다 해도 안심하긴 이르다. 노태우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냈다. 김영삼은 노태우와 합당해 집권에 성공했으나, 노태우와 전두환을 법정에 세웠다. 그게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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