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와 정부부채의 변주곡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가 크고 증가속도가 빠르다는 걱정이 많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2023년 2분기 현재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1.7%로 같은 기간 선진국 평균 70.9%를 30%포인트 이상 상회하는 수준이다. 가계부채 규모가 클 경우 부채부담으로 인한 민간소비 압박도 문제지만, 빚을 줄이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정부부채로 전이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가계부채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항상 기승전 ‘재정 혹은 재정건건성’ 논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계를 포함한 민간부채와 정부부채가 상호 전이되는 통로는 2가지가 있다.

첫 번째 통로는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경우다. 대외적 요인의 급속한 변동에 의한 위기(1980년대 북구 3국 경제위기), 기업부실과 그에 맞물린 금융부실 및 외환위기에 의한 위기(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부동산발 가계부채와 금융시스템 붕괴에 의한 위기(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재정상황 악화로 인한 위기(2010년 유럽 재정위기) 등이 발생할 경우 민간부문의 부채는 정부부채로 이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간의 부채 조정 과정에서 금융부문의 부실이 금융위기를 동반한 경제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때 부실 금융기관 처리를 위한 공적자금 조성과 위기대응 재정지출 확대가 바로 전형적인 민간부채에서 정부부채로 전이되는 경로인 것이다.

두 번째 통로는 분야별 재원배분에 의한 경우다. 우리나라는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경제중시-복지경시>의 재원배분을 하였는데 그 결과, 정부부문에 비해 가계부문의 부채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2020년 현재 9.2%로 OECD 국가들 중 9번째로 낮고 국공립병원 비중은 6.2%, 국공립학교 비중은 55.2%로 OECD 국가들 중 최저수준이다. 또한 한국과 유사한 국가로 호주를 들 수 있는데 호주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비중 4.5%, 국공립병원 비중 77.2%로 낮은 수준이다. 그 결과 한국과 호주의 정부부채는 GDP 대비 40%대 수준(OECD 일반정부 기준)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가계부채는 각각 101.7%와 122%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즉, 주택마련·교육·개인의 질병치료 및 건강관리 등을 ‘각자도생’의 각오로 해결해 온 결과 오히려 정부부채에서 가계부채로 역전이 된 것이다.

우리 경제에서 가계부채가 정부부채로 전이가 되거나 혹은 정부부채의 증가가 재정위기로 연결되어 경제위기로 전화될 가능성은 없는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여 살펴보면 어떨까?

체크리스트 1은 급격한 대외환경 변화 요인이 발생하여 경제위기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2024년은 2023년보다 경제성장률(1.4→2.2%), 소비자물가(3.6%→2.6%), 경상수지흑자(310억달러→500억달러) 측면에서 모두 개선될 전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위기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위기로부터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경제 펀더멘털과 실질 가계소득의 감소, 충분하지 못한 고용창출, 지표물가와 체감물가와의 괴리 등 민생경제의 어려움은 언제든 경제위기로 발화될 수 있는 불씨다.

체크리스트 2는 가계부채 급증과 금융시스템 붕괴로 인한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점검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한 가계부채의 급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가계부채 누적은 잠재적 리스크로 될 가능성이 있어 이를 연착륙시키는 정책적 노력은 매우 필요하다.

체크리스트 3은 정부부문 부채 증가에 의한 재정위기 가능성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감세와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기반 약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및 초고령사회 등 재정지출 소요 증대로 정부부채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2023년 국가채무비율 50.4% 중 금융성 채무비중(35%)을 고려하면 진성 채무비율은 33% 정도다. 또한 국채 만기구조의 장기화(2022년 11.2년), 단기채무비중 낮음(2022년 8.6%), 국채에 대한 외국인 보유 비중 크지 않음(2022년 19.8%) 등은 재정위기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국민 스스로가 많은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교육, 의료, 주거 등에 대한 공공성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재정수입만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면 정부부채의 증가는 불가피하지만 재정부문 위기까지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안정화시켜야 정부도 튼튼해질 수 있다. 정부부채와 가계부채 안정화의 지름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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