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엔 ‘햄릿’이 산다

이용균 스포츠부

야구장에는 ‘햄릿’들이 산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생과 사의 결정을 한 경기에도 수차례 내려야 한다. 혼자 고민하고, 마음속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야구장의 햄릿은 자신의 결정을 온몸으로 밖에 드러낸다. 한 팔로 모자라 두 팔을 돌리기도 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고독한 존재. 3루코치다.

이용균 스포츠부

이용균 스포츠부

작전·주루코치로도 불리는 3루코치는 3루 베이스 근처에 선다. 주자들을 홈으로 들여보낼지 말지를 결정한다. 경기 상황, 타구 방향, 외야수들의 수비 능력, 주자의 주루 능력 등을 골고루 종합해 판단한다. 한 팔을 크게 빙글빙글 돌리면, 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다. 팔 스윙의 크기와 빠르기는 주자의 스피드를 결정한다. 팔이 빠르게 돌아가면 주자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

주자를 막아 세워야 할 때도 있다. 혹시 보지 못할까봐 온몸을 던져 막아선다. 대신 야구규칙은 주자의 몸과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실수로라도 닿았다면 주자는 아웃이 된다(물론 홈런은 예외여서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잡아 세울 수 없지만, 서도록 막아서는 게 임무다. 물론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다.

지난 26일 잠실 LG-두산전 7회초 1-2로 뒤진 LG가 1사 1·3루 기회를 잡았다. 1루 주자가 발빠른 김용의로 교체됐다. 타자 유강남이 좌중간으로 타구를 날렸다. 3루 주자는 충분했지만 1루 주자의 홈 대시는 아슬아슬했다. 두산 좌익수 김재환, 유격수 허경민을 거쳐 홈으로 공이 중계됐다. 김재걸 LG 3루코치가 1루에서 출발해 2루를 거쳐 3루로 향하는 김용의를 보며 팔을 돌렸다. 승부였다.

홈으로 달려가는 김용의 옆으로 김 코치가 함께 달렸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공보다 약간 빨랐고, 심판이 손을 좌우로 뻗으며 ‘세이프’를 선언했다. 단타에 1루 주자가 홈까지 뛰는 과감한 승부는 단숨에 역전을 만들었다. 마지막까지 그 장면을 확인한 김 코치는 오른 주먹을 살짝 쥐며 소심한 세리머니를 했다. 주자 보라고 팔을 빙빙 돌리지만, 정작 판단 성공의 자축 세리머니는 작았다. 이 점수는 이날 승부의 결승점이었다.

김 코치는 “중계플레이 유격수가 허경민이 아니라 김재호였다면, 김용의를 3루에서 세웠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외야수, 중계 내야수, 1루 주자의 스피드 등을 모두 고려한 복합적 판단이다. 두산은 유격수 김재호가 부상으로 빠졌고, 그 자리를 3루수 허경민이 채웠다. 어깨가 약한 것이 아니라 외야 중계플레이의 경험 차이다. 좌중간 타구 중계플레이 때 위치, 공을 받아 송구로 연결하는 동작의 빠르기 등에서 작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틈을 파고든 결정은 ‘죽지 않고 살았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햄릿의 결정은 복잡하고 어렵다. 무조건 세우면 살겠지만, 점수가 나지 않는다. 과감하게 돌렸다가 죽는다면, 경기 전체를 그르친다.

코로나19의 시대, 모든 결정은 햄릿의 결정이다. 김 코치는 “욕 안 먹으려면, 세우는 게 편하다. 그런데, 그러면 이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 ‘이기는 길’을 고민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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