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본도 수정본도 대통령기록물 아니다

박경신 |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교수

대통령기록물법을 무슨 국가비밀보호법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다행히도 국가비밀보호법이 없다. 하위법령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 기록을 비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퇴임과 동시에 대통령 기록을 빠짐없이 정부에 이관 및 공개토록 하여 전직 대통령 직무에 대해 국민이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지정”한 기록물만 비밀이 되며 이 또한 한시적이다. 법16조에 명확히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대통령기록물은 공개함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공개 자체에 대해 그리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해서 또는 정상회담이라고 해서 국민들이 나서서 무조건 ‘국가안보를 위해 비밀로 해야 한다’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다. 보통 정부들은 국가안보를 빌미로 그런 정보를 비밀로 지키려 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정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들만 그걸 왜 공개하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시론]초본도 수정본도 대통령기록물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기록물법의 취지가 국민에 의한 대통령 평가이기 때문에 평가에 불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 특히 대통령의 내심이 진동하는 흔적이 담긴 초안, 제1수정안 등등은 직무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기록물법의 원조격인 미국 Presidential Records Act도 외부에 회람하지 않은 초안 또 정책형성에 관여하지 않은 초안은 대통령기록물로 보지 않아 임기말 이관 의무 자체가 없다. 대통령이 문서 초안을 국무총리나 관련 장관에게 주고 ‘정책을 세워보라’고 했던 것도 아니라면, 단지 그런 문서를 이리저리 수정하며 남긴 흔적들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법을 개정해보려고 수정안을 혼자 워드작업을 했다고 치자. 이 개정법 초안을 측근에게 잠시 보여줬다고도 치자. 수정안을 연구하라고 예산이나 국무회의 토론시간을 의미있게 배정한 것도 아니며 결국 법개정이 청와대 밖에서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면 그건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다. 도리어 노 전 대통령이 <삼국지>를 읽고 거기에 가필을 조금 해서 국방부 장관에게 주며 ‘대북정책 수립에 참고하라’고 줬다면 이야말로 대통령기록물이 될 것이다.

그 당시 대화록 ‘초본’은 국정원이 대통령을 대신하여 만든 것일 뿐 이것을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에 이용한 적이 없는 이상 대통령기록물이라 보기 어렵다. 또 노 전 대통령 및 측근의 손길을 거친 대화록 ‘수정본’ 역시 정책수립에 이용된 적이 없었음은 물론 제대로 공개조차 된 적이 없는 이상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다. 물론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 기록은 대통령기록물이다. 하지만 그 기록으로는 이미 가장 정확한 음원파일이 있고 이것이 ‘사초’이다. 그 사초를 이리저리 글로 옮겨본 시도의 결과물들은 외부에 회람된 적도 정책형성에 이용된 적도 없다면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2012년 대선전에 국정원이 가지고 있던 대화록 수정본이 2급 비밀이었음에도 왜 그것도 박근혜 캠프에만 유출이 이루어졌는지이다. 지난 6월의 공개는 전 국민에게 동시에 이루어졌으니 국민 입장에서는 커다란 해악이 없고 국정원 자신이 자발적으로 비밀해제를 한 후 공개했으니 절차적으로 하자는 없다. 그러나 2012년 대선즈음 국정원은 국민 전체에게는 비밀로 해놓고 대선캠프에만 유출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며 도리어 유출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국민을 오도하는데 이용하도록 한 것이므로 대선개입이다. 댓글을 통한 개입에 이은 정보력을 통한 제2의 대선개입이다. 유출을 누가 제안했는가에 따라 캠프 내 사람들에게는 방조죄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핵심이 여기에 맞춰지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NLL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생각도 되도록 투명하게 공개돼 더 이상 이를 빌미로 핵심에 대한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막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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