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엔 침묵·선택적 조문…죽음 앞에서도 ‘분열’로 치닫는 여야

조형국·임지선 기자

민주당, 성추행 의혹 사건 사실상 외면…2차 피해 방조

통합당 “인사청문회서 파고들겠다” 정치 쟁점화 예고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죽음 앞에서도 정치권은 정쟁으로 갈라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극적 선택을 내리기 전 있었던 성추행 고소 사건에 사실상 침묵하며 ‘2차 피해’를 방조했다. 미래통합당은 “대대적 서울특별시장(葬)은 피해자에 대한 공식 가해”라며 조문을 미루면서 이번 사안을 정쟁화했다.

12일 여야는 선택적 조문과 침묵 공방을 벌이며 여론 분열을 부추겼다. 국론 통합과 균형 잡힌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시장 애도에 치우쳐 피해호소인을 외면하는 민주당의 태도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고위공직자를 서울특별시장으로 추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민주당은 서울시내 전역에 ‘박원순 시장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게시하며 추모 의지를 나타냈다. 장례위원회에는 이해찬 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박 시장과 인연을 가진 민주당 의원 10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조문과 서울특별시장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지적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 시장 사망으로 수사당국의 추가 조치가 난망해진 탓에 당이 나서 진실을 규명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민주당은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위 공방은 장례 이후로 미루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라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지난 10일 박 시장 성추행 의혹에 관한 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예의가 아니다”라고 일축하면서 민주당 내에도 금기령이 내려진 분위기다.

민주당은 주말 사이 “무분별한 신상털기를 중단하라”는 언급만 내놨다.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11일 “지금은 어떤 사실도 밝혀진 바 없다”며 “또 다른 논란이 만들어지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피해호소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당이 나서겠다는 메시지는 없었다.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며 ‘고소인’이 ‘피해호소인’으로 바뀐 것 외에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당은 애도보다 정치공세에 무게를 실었다. 공식적으로는 “무조건적인 애도 분위기가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사안을 정치공세의 빌미로 삼겠다는 태세다. 박 시장 실종 당시 주호영 원내대표가 “언행에 유념해달라”며 당 지도부부터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주말을 거치며 강경 기류로 바뀌었다.

김은혜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박 시장에 대한 대대적 서울특별시장은 피해자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가해”라고 비판했다. 김기현·김미애 등 통합당 소속 의원 48명은 상복 차림으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권력을 가진 자의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더 큰 고통과 사회적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2차 가해를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통합당은 성추행 의혹을 오는 20일 열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파고들겠다고 예고했다. 공소권이 없더라도 이미 고소가 접수된 부분에 대한 경찰청장 후보자의 입장을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통합당 지도부는 공식 조문을 하지 않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백선엽 장군 조문을 마치고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선 인간으로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라면서도 “그 밖에는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해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상상 이상으로 피해자 2차 가해가 벌어지는 걸 보면 (조문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이날 통합당 전·현직 지도부 가운데 처음 빈소를 찾은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죽음 앞에서는 일단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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