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29)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89)와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56)에게 인사말 외에 별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상주로서 예의를 지키는 선을 넘지 않은 것이다. 남북 교류·협력 의지는 비치면서 남측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지켜보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여사와 현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차 평양을 방문하고 27일 돌아와 “김 부위원장과 조의 표시와 감사 인사 이외의 별도 대화는 없었다” “김 부위원장과 별도 면담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성사 주역인 김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김 위원장의 ‘3자 유훈 회동’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김 부위원장도 김정일 유훈을 받들어 대남사업 의지는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 여사, 현 회장과의 면담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 성과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성실한 이행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의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생전에 관심을 기울인 두 정상선언의 성실한 이행과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등 민족사업을 김정은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거꾸로 두 선언을 외면해온 이명박 정부를 향한 압박 메시지이다. 현 회장은 대북사업 논의 여부에 “순수한 조문 목적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얘기만 했다”고 선을 그었다. 이 여사 측이 “어제 오찬, 만찬, 오늘 조찬까지 현대 측과 했고 북측 인사는 한 분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과의 만남은 상주로서, 김영남은 의전상 인사를 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면서 “북측이 당분간 승계 안정화에 주력하며 내년 남측 총선이나 대선 결과를 보며 기다리는 전략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정상선언을 이행하고 북한을 포용하지 않으면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간접적 주문이지, 대남 화해 메시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