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누리호가 키운 꿈의 높이 700㎞…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이종필 교수

우주를 향한 꿈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미국 인공위성이 우릴 찍고 있대”
아폴로 11호·새턴V 로켓 마주한
유년 시절엔 이런 상상을 품었다
‘21세기엔 달로 수학여행쯤은…’

나의 유년기는 1970년대였다. 동네 공터에는 ‘라면땅’이나 ‘오징어 달구지(오징어 게임)’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담벼락 앞에는 늘 ‘쪽자(달고나)’ 아저씨·아주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네 꼬마들의 세계에도 현자와 구루는 있게 마련이었다. 우리 동네의 현자는 언제나 삼촌에게서 들은 신기한 얘기들을 또래들에게 많이 들려주었다.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인공위성이었다. 미국이 쏘아올린 수많은 인공위성이 저 멀리 우주 공간에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부산의 어느 동네에서 노닥거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내심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어디 있냐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이니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혼돈의 늪에 빠졌다.

그때의 미국은 동네 꼬마들에게도 슈퍼파워였다. 나이 차이에 비교적 둔감한 유년기였지만 유독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보았는지” 여부는 대단히 민감한 기준이었다. 새턴V 로켓과 달착륙선 모형은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머나먼 미래로 느껴졌던 21세기가 도래하면 달 정도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다녀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지난 10월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발사실험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픈 몸으로 병실에 앉아 발사 장면을 지켜보았다. 새하얗고 매끈한 누리호가 거짓말같이 미끄러지듯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당장의 아픔과 이튿날 예정된 수술의 공포도 잊은 채 40여년 전의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경제 효과니 군사적 활용성이니 그런 복잡하고 피곤한 ‘아재스러운’ 계산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우리도 우주로 가는구나. 이제 우리도 이 행성을 벗어날 수 있게 됐구나. 나는 그 사실 자체가 무척 좋았다.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던 우주에 이제 한 발 내디디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다른 이유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우주는 아주 옛날부터 인류의 큰 관심사였다. 밤하늘의 규칙을 찾는 과정에서 16세기 천문학혁명이 일어났고 이는 17세기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 코페르니쿠스 이후로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쫓겨났다. 유일자(The One)의 위치에서 여럿 중 하나(One of Them)로 지위가 격하된 것은 그 위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기에 충분했다. 우주적인 규모에서 보자면 지구는 정말 광활한 우주 속의 보잘것없는 조그만 돌덩이에 불과하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 한들 그 조그만 돌덩이 위에서 아등바등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이상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1961년 사상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이렇게 말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선회하면서 저는 우리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게 됐습니다. 형제들이여, 부디 이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가꾸어 나갑시다. 파괴하지 말고.” 냉전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기에 가가린의 외침은 울림이 더욱 크다.

왜 우리는 우주로 가려 하는가? 바로 우리의 꿈 때문이다. 우주는 우리의 고향이자 기원이다. 과학적으로 따져봤을 때 우리 모두는 ‘별에서 온 그대’임이 확실하다. 기원을 향한 여정은 본능에 가까운 꿈이다. 또한 우주는 그 옛날 선조들의 ‘신대륙 발견’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품고 있다. 이 좁은 돌덩이를 벗어나 신세계를 탐험하려는 갈망은 인류의 오랜 꿈의 결정체이다. 우리 인간종은 미지의 영역에 과감히 발을 내디뎌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왔다. 어쩌면 끝없는 호기심과 그 해소가 사피엔스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민간 우주여행 신기원 이룬 올해
스페이스X·버진갤럭틱…
누군가의 일생의 꿈이 펼쳐졌고
누리호의 발사실험도 있었다

테슬라의 회장이자 스페이스X의 설립자인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인간을 보내기 위해 지금부터 하나씩 준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머스크는 적어도 세계 최고의 ‘꿈 판매자’이다. 게다가 머스크를 포함한 현재 이 분야의 선각자들은 단지 꿈만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21년은 민간 우주여행의 신기원을 이룬 해이다. 버진갤럭틱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7월 자기 회사의 로켓 여객기를 타고 처음으로 지구준궤도 관광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제프 베이조스도 자신이 설립한 회사 블루오리진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즐겼다. 이들과 달리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승객들은 3일 가까이 지구궤도를 돌았다. 당연히 세 경우 모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아마도 누군가는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우주여행을 하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것이 일생의 꿈이었을 것이고 이제 막 누리호를 쏘아올린 우리에게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꿈으로 다가온다.

2021년의 현실은 나의 유년기와 너무나 다르다. <육백만불의 사나이>를 보고 마이클 잭슨을 듣고 자란 내 또래에게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와 한국 팝송에 열광하는 모습이 무척 낯설다. 심지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달고나까지 대유행이라니. 이제는 한국과 한국문화가 다른 나라의 누군가에겐 하나의 꿈이 되고 있다. 적어도 이제 우리는 우리의 로켓을 보면서 우리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누리호를 보면서 유년기를 보낸 ‘누리호 키즈’들은 언젠가 우주탐사의 BTS가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때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로켓과 우주선을 보면서 우주의 꿈을 키워나갈 것이다. 만약 그때 한국 우주탐사의 출발점이 어디였냐고 되짚어본다면 2021년 10월21일의 누리호는 분명 가장 큰 변곡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누리호가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본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누리호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꿈을 하나씩 심어놓았다. 나는 누리호의 가장 큰 가치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를 향한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게 해줬다는 사실 말이다. 누리호가 성공이냐 실패냐 말이 많다. 나는 잊었던 내 꿈의 높이가, 지금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의 꿈의 높이가 무려 700㎞까지 높아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마도 몇 년 뒤에는 달을 넘어 화성이나 태양계 끝까지, 나아가 심우주까지 우리의 꿈이 뻗어나갈 것이다.

그래서, 누리호는 결국 성공했나, 실패했나? 나는 이런 질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10월21일 시험발사는 우리가 결국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

위성 모사체를 원하는 지구궤도에 올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그날의 시험은 실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위성이 아닌 모사체를 실었다는 것은 이번 시험이 ‘궤도 진입 실패’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문제점을 점검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었음을 뜻한다.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한 300t급 추력의 1단 로켓을 실제로 날려본 것은 10월21일이 처음이었다. 세상 그 어떤 과학자나 기술자도 첫 시험에서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작동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과학의 역사에서 실패는 더 나은 완성을 위한 자연스럽고도 필수적인 과정으로 포함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위성 모사체가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은 진품이 아닌 모사체를 쓴 목적에 지극히 부합하는 ‘성공’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10월21일의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내년에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만사를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규칙들처럼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적 제로섬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실패가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로 작동하며 실패가 곧 성공이 되는 복잡한 현실의 변주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이 세계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다른 분야에 비해 아직은 다소 부족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분법적 제로섬의 성공만 중요한 풍토에서는 누구라도 실패를 무릅쓰는 힘든 선택을 하기보다 형식적으로 쉽게 성공하는 연구에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창의와 혁신에 이르는 길은 끝없는 실패의 자갈밭으로 뒤덮여 있다. 인류를 최초로 달에 보낸 것으로 유명한 미국 아폴로 계획의 1번 우주선은 사고로 3명의 우주인을 모두 잃었다. 아폴로 계획이 재개되기까지 20개월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을 달에 보낸다는 호언장담
7년 뒤 실현 가능한 모험이 됐듯
누리호를 보고 자란 미래 세대는
달 넘어 심우주를 꿈꾸지 않을까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른바 ‘달 연설(Moon Speech)’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낼 것입니다. 그게 쉬운 일이어서가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케네디가 이 연설을 했을 때는 1962년이었다. 그때까지 미국의 우주개발 성적은 소련에 비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1년 전 4월 유리 가가린이 사상 최초로 지구궤도를 1회 선회비행한 것에 비해 미국의 앨런 셰퍼드는 5월 겨우 준궤도 비행을 했고 1962년 2월에야 존 글렌이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했다. 그런 상황에서 채 1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소련보다 빨리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뒤 귀환시키겠다는 계획은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케네디의 호언장담은 1969년 7월16일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및 귀환의 여정은 미 항공우주국이 제시한 계획 중 비용은 가장 적으면서도 위험은 가장 큰 달궤도 랑데부 방식이었다.

훌륭한 정치지도자는 충분한 가치만 있다면 때로는 국민들에게 어려운 선택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의 짐이나 부담이 아니라 꿈과 희망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야망을 망상이 아닌 실현 가능한 모험으로 만드는 것이 과학이다.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사피엔스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게 아닐까 싶다. 누리호는 이미 그 목표를 충분히,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22)누리호가 키운 꿈의 높이 700㎞…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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