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미얀마 소녀는 왜 팔려갔나… 중국으로 인신매매 된 릴리의 ‘지옥 같은 4년’

양곤(미얀마) | 박순봉 기자

빈곤 탓 속아서 강제결혼 갇혀 지내며 폭력 시달려

탈출 기도 4년 만에 귀향 “인신매매는 탐욕의 결과”

2012년 1월 어느날 새벽. 중국 광저우 외곽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 허름한 집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집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딘 릴리(당시 21세·가명·미얀마)는 순간 망설였다. 인신매매로 강제 결혼을 해 이 집에서 살아온 지난 4년간 수천번도 넘게 ‘탈출’을 꿈꿨다. 감시하는 남편과 가족들이 모두 신년축제에 가느라 집을 비운 지금은 다시 없는 기회였다. 갓 3살이 된 딸과 2살 난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치 않은 자식들이었지만 혈육의 정은 떠나려는 릴리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눈물을 훔치며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딸의 생사도 모른 채 홀로 슬퍼할 아버지를 생각하자 결심이 섰다. 릴리는 꼴짜기를 내려가 사람들이 있는 시장으로 갔다. “미얀마로 가는 길을 알려주세요.” 릴리는 어설픈 중국말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릴리는 미얀마 수도인 양곤 외곽 빈민가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나이 차가 많이 났던 오빠는 릴리가 어릴 때 분가했다. 어머니는 릴리가 12살 때 출산을 하다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릴리의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시멘트 바르는 일을 해 하루 2000차트(약 2000원)를 벌었다. 이 돈으론 릴리의 가족이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

<b>눈가에 맺힌 슬픔</b> 17세 때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중국으로 팔려간 뒤 강제결혼으로 두 아이를 낳고 4년 만에 탈출한 미얀마인 릴리가 지난달 20일 미얀마 양곤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월드비전 제공

눈가에 맺힌 슬픔 17세 때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중국으로 팔려간 뒤 강제결혼으로 두 아이를 낳고 4년 만에 탈출한 미얀마인 릴리가 지난달 20일 미얀마 양곤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 월드비전 제공

릴리는 미얀마의 다른 빈민가 아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일을 했다. 우기에는 논에 있는 작은 게나 물고기를 잡아 팔았다. 건기에는 미얀마 전통 음식인 생선요리에 들어가는 나물을 뜯어 팔았다. 많이 벌어도 하루에 2000~3000차트밖에 벌지 못했다. 그나마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일을 못해 굶어야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미얀마에는 일자리가 없다. 17살이 된 릴리 역시 주변 또래 친구들처럼 태국 이주노동을 고민했다. 일자리를 찾던 릴리에게 이웃집 여자가 “미얀마 내 태국 국경에서 직물 파는 일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를 부양하고 남동생들을 학교에 다니게 하겠다”던 희망은 미얀마 국경에 도착하면서 ‘절망’이 됐다.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일하러 왔어요. 집으로 돌아갈래요.”

중국계 미얀마 중년 여자는 릴리에게 “중국 남자와 결혼하라”고 했다. 중년 여자는 “중국 남자와 결혼하면 금도 받을 수 있고, 고향에 돈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릴리는 거절했다. 중년 여자는 “집에 보내주겠다”며 낯선 남자와 여자에게 릴리를 넘겼다. 릴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릴리가 도착한 곳은 중국 광저우의 시골마을이었다. 남편이 될 사람은 이미 돈을 지불했다고 했다. 그제서야 릴리는 자신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릴리는 자신보다 10살이 많은 중국 남자와 강제로 결혼했다. 잡혀간 지 한달 만에 탈출을 시도했지만 곧 붙잡혔다. 이후에도 여러번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탈출에 실패할 때마다 릴리는 가족들에게 심하게 맞았다. 눈 위로 피가 흘러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릴리 앞에서 가족들은 살아있는 돼지와 닭을 죽이며 주문을 외웠다. 릴리는 그 모습이 끔찍하고 무서웠다.

릴리는 늘 갇혀 지냈고, 남편과의 잠자리는 두려웠다. 1년 뒤 딸을 낳았고, 2년 후에는 아들을 낳았다. 아이들을 낳고 난 뒤에도 시아버지와 남편의 폭력은 계속됐다. 1년쯤 지나 중국말을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릴리는 가족들이 늘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릴리는 외로웠다. 4년 세월을 그렇게 홀로 보냈다.

광저우의 시골마을을 벗어난 릴리는 밤에 버스를 타고 국경 근처에 이른 뒤 보트로 미얀마에 도착했다. 미얀마 출입국 관리자의 도움으로 그는 6일 만에 고향에 도착했다. 하지만 릴리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살던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남동생들은 살기 위해 흩어졌다. 또다시 홀로 남은 릴리는 아동구호단체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양곤의 쉼터에서 새로운 미래를 찾고 있다.

지난달 20일. 미얀마 양곤의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릴리는 자신이 겪었던 얘기를 하면서 연신 눈물을 훔쳤지만, “이제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인신매매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탐욕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제잖아요. 미얀마에서는 아직도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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