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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엠넷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큰 호응 끝에 막을 내렸습니다. 저는 사실 스우파를 처음부터 챙겨보진 못했고, 뒤늦게 7화쯤 방영할 때서야 그 매력을 알게 돼서 1화부터 정주행을 하게되었는데요. 그간 보지 않았던 것은 너무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하도 ‘스포’를 많이 당하다보니 어느샌가 보지도 않았는데 다 봐버린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했달까요. (막상 보고 난 뒤엔 왜 진작부터 보지 않았을까 후회했습니다만)

<스우파>에선 댄서들의 다양한 창의적인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많은 댄서들을 모아’ 무대를 꾸리는 미션에서의 홀리뱅(왼쪽), ‘남성 댄서들과 함께’ 춤추는 미션에서의 훅의 모습. Mnet 방송 화면 갈무리.

<스우파>에선 댄서들의 다양한 창의적인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많은 댄서들을 모아’ 무대를 꾸리는 미션에서의 홀리뱅(왼쪽), ‘남성 댄서들과 함께’ 춤추는 미션에서의 훅의 모습. Mnet 방송 화면 갈무리.

<스우파>는 즐거움 뿐 아니라 많은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이 프로그램이 그간 화려한 무대에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조연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 경쟁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는데요.

그간 <스우파>가 방영되는 도중에도, 그리고 끝난 이후에도 많은 말들이 나왔습니다만. 저는 위에서 말한 두가지 이야깃거리를 중심으로 더 볼만한 콘텐츠들엔 무엇이 있을까 해찰해보기로 했습니다. <스우파>를 보시지 않은 분들도 읽으실 수 있도록 썼으니 편하게 스크롤을 내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포트라이트 밖의 세계

그간 ‘댄서’라고 하면 보통‘백댄서’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유명 아이돌이 가운데서 춤을 추면 그들을 빛내기 위해 조용히 뒤에서 받쳐줘야하는 존재입니다. 틀리면 안되지만 튀어서도 안됩니다. 댄서 엠마는 <스우파>에서 “백업 활동을 하면 아티스트분을 빛내주러 가는 거잖아요. 어쨌든 그 무대는 제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제 걸 너무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스우파>를 통해 그간 주목받지 못해왔던 댄서들의 작업이 단순히 ‘백업’을 위한 것이 아닌 독립적인 예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포트라이트 바깥에서도 최선을 다해온 이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스우파>를 보면서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액션 우먼 인 할리우드>(2020·이하 액션우먼)가 떠올랐습니다.

그간 백댄서가 아닌 댄서로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한 댄서 엠마(왼쪽), 그간 가려져온 스턴트우먼들의 세계를 집중 조명한 <액션 우먼 인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그간 백댄서가 아닌 댄서로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한 댄서 엠마(왼쪽), 그간 가려져온 스턴트우먼들의 세계를 집중 조명한 <액션 우먼 인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액션우먼>은 주인공 뒤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액션 영화를 빛내주는 스턴트우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보통 화려한 아이돌의 무대를 보면서 백댄서에 주목하는 일이 없듯, 화려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면서 수십억 출연료를 받는 주인공 배우 대신 스턴트 대역들을 상상하며 그들의 액션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유심히 보는 경우는 없겠죠. 한 스턴트우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턴트 배우가 맡은 바를 잘 수행해낼 수록 그의 존재는 가려지죠.”

놀랍게도 스턴트 배우들이 맞닥뜨리는 위험은 여전히 대부분‘실제 상황’입니다. 액션 영화에선 최대한 ‘진짜 부딪치는 것 같은’ ‘진짜 얻어맞는 것 같은’ 실감나는 장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아슬아슬한 상황에 도전하는 것이죠.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스턴트 배우들이 이렇게까지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촬영하는지 몰랐습니다. 수십미터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자동차가 장애물에 부딪쳐 부서지는 장면 등은 CG라든지 ‘마법의 안전장치’를 통해 어떻게든 쉽게 해결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매트릭스2> 속 시속 140km가 넘는 오토바이 질주 장면과 대형 트럭 위를 점프해 지면에 ‘꽝’ 착지하는 장면, 60m가 넘는 산기슭을 고무보트를 탄 채 정신없이 미끄러져 그대로 수십m 아래 절벽 아래 물에 처박히는 영화의 장면 등이 전혀 CG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 저는 그만 입을 쩍 벌리고 말았습니다.

영화 <데드풀2>(2018) 촬영 현장에서도 젊은 스턴트우먼이 사망해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었는데요. 실제 촬영 현장이 위험하기 때문에 촬영 중 사망한 베테랑 스턴트 배우들도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매트릭스2>에서 바이크 전문 스턴트우먼 데비 에반스가 오토바이 추격신을 촬영하고 있다. 이 테이크에서 CG는 오직 배우의 얼굴에만 사용됐다.(왼쪽) 영화 <더 호스트>에서 하이디 머니메이커가 연기한 공중에서 4회전하며 차가 부서지는 ‘정석적인’ 장면.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스턴트”로 이 장면을 꼽았다. 영화 화면 갈무리

<매트릭스2>에서 바이크 전문 스턴트우먼 데비 에반스가 오토바이 추격신을 촬영하고 있다. 이 테이크에서 CG는 오직 배우의 얼굴에만 사용됐다.(왼쪽) 영화 <더 호스트>에서 하이디 머니메이커가 연기한 공중에서 4회전하며 차가 부서지는 ‘정석적인’ 장면.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스턴트”로 이 장면을 꼽았다. 영화 화면 갈무리

여성들은 촬영장에서 한층 더 힘든 일을 겪습니다. 촬영 현장에 여성이 드물다보니 수많은 바이크 스턴트 대회에서 상을 거머쥔 배우조차 새로운 촬영 현장에 갈 때마다 실력을 의심받습니다. 스턴트맨들은 몸을 가리는 의상 덕에 옷 아래에 많은 보호대를 찰 수 있지만, 스턴트우먼은 비행기에서 떨어져 아스팔트를 구르는 아찔한 장면도 얇은 드레스 하나 걸치고 하이힐을 신은 채 찍어야 하기도 합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스턴트우먼들은 남성보다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스턴트우먼들은 “여성이 아닌 스턴트배우로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간혹 일부러 차에 와서 부딪치는 보험사기꾼들을 보고 “할리우드 액션 뺨치네!”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사실 엄청나게 빨리 다가오는 자동차에 자연스럽게 부딪치는 연기도 굉장한 숙련을 필요로 하는 고급 기술입니다.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그대로 치이는 사실감을 살리면서도 안전하게 굴러야하기 때문이죠. 한 베테랑 스턴트우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빠르게 달려오는 자동차에 잘 부딪치려면 충돌하는 순간 자동차에 가까운 쪽의 다리에 힘을 쭉 빼야돼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부딪칠 수 있죠” 다큐를 보면서 이 부분에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평소에 이 기술을 활용할 일은 별로 없겠네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프루프>엔 킬빌에서 우마 서먼의 스턴트 우먼을 했던 조이 벨이 직접 역을 맡아 엄청난 스턴트를 펼쳤다. 스턴트우먼이 직접 역을 맡는 경우는 드문데다가, 그가 선보인 스턴트의 난도가 엄청났기 때문에 화제가 됐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프루프>엔 킬빌에서 우마 서먼의 스턴트 우먼을 했던 조이 벨이 직접 역을 맡아 엄청난 스턴트를 펼쳤다. 스턴트우먼이 직접 역을 맡는 경우는 드문데다가, 그가 선보인 스턴트의 난도가 엄청났기 때문에 화제가 됐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인상깊었던 건 역시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의 눈빛이었습니다.

거의 반세기 동안 <원더우먼>을 비롯해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스턴트를 맡아온 전설적인 스턴트우먼 제니 에퍼는 “스턴트를 끝내고 다같이 모여 축하하며 떠들썩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며 눈물을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수십년간 위험한 현장을 누빈 베테랑 스턴트우먼 줄리 앤 존슨(<미녀삼총사> <더티해리> 등) “스턴트우먼에게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나는 영원한 스턴트우먼”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자신의 일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찬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스우파>의 댄서들이 떠올랐습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격투신이 있댔어요. 그래서 냉큼 승낙했죠.”(안젤라 메릴) “스턴트 연기는 자신의 안에 있는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것과 같아요. 연기의 가능성은 무한으로 확장되죠.”(하이디 머니메이커)

■‘언니들’의 대결

<스우파>에서 허니제이의“잘봐, 이게 언니들 싸움이다”란 발언은 모든 회차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언으로 남기도 했는데요. <스우파>에는 애증의 과거 동료, 사제 관계, 영원한 2인자와 1인자 간의 대결 등 다양한 ‘싸움’이 등장했습니다.

샘 매그스가 쓴 <걸 스쿼드>는 스포츠, 정치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조건 속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스쿼드Squad’라는 단어의 뜻은 ‘무리’ ‘집단’인데요. 이 단어는 어찌보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잘 드러내준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엔 여성 배구팀, 테니스선수, 과학자, 정치가, 전사, 해적(!) 등이 등장합니다.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온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 이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8세기 유럽 ‘대해적시대’의 유명한 남장여자 해적 앤 보니와 메리 리드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진진했는데요. 우리는 보통 해적이라고 하면 약탈, 폭력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저자에 의하면 해적 시대는 어느정도 노예, 성별, 계급의 자유가 보장되는 ‘해방구’같은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기록에 따르면 남장여자 직원 기록만 100건이 넘는다고 하고 탈출 노예가 선원의 1/3 이상인 배도 심심찮게 보였다고 하네요.

보니와 리드 역시 각자의 이유로 바다에 나선 호걸들인데요. 당시 포로로 잡힌 이들은 두 여성 해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용>

“앤과 메리는 그(캘리코 잭)의 선원 가운데 가장 용감하고 가장 저돌적이고 가장 대담했다[...]둘다 품행이 나쁘고 욕설과 독설을 많이 했으며, 배 위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고, 기꺼이 했다.” -샘 매그스, <걸 스쿼드> “배에 탔던 인질의 증언에 따르면 양손에 칼과 권총을 든 여성 해적들은 전쟁터에서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욕하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가슴을 드러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카리브해, 북미 식민지, 영국 전역에서 이슈가 되었다.” -레베카 사이먼, ‘앤과 메리의 복수’

18세기 해적 앤 보니와 메리 리드(왼쪽). 여자 테니스의 라이벌이자 절친인 슬론 스티븐스와 매디슨 키스가 경기가 끝난 뒤 인사하고 있다. Charles Johnson‘s book of pirates, 게티이미지

18세기 해적 앤 보니와 메리 리드(왼쪽). 여자 테니스의 라이벌이자 절친인 슬론 스티븐스와 매디슨 키스가 경기가 끝난 뒤 인사하고 있다. Charles Johnson‘s book of pirates, 게티이미지

이 책은 주로 여성들간의 우정과 연대를 다루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존경을 바탕으로 경쟁하는 여성들도 등장합니다. 여자 테니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세기의 라이벌이자 절친 매디슨 키스와 슬론 스티븐스인데요.

2017년 US오픈대회에서 슬론 스티븐스는 절친 매디슨 키스를 이기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세계랭킹 83위인 슬론의 승리도 놀라웠지만,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승패가 갈리는 순간에 서로를 안아준 두 선수의 깊은 우정이었습니다. 테니스라는 스포츠는 철저한 “1대1 게임”이자 “당신이 세트를 이길 때마다 상대는 지는” 잔인한 게임이지만 매디슨 키스는 진심으로 절친의 승리(이자 자신의 패배)를 축하합니다.

스포츠물에서도 역시 뜨거운 대결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죠. 최근 일본에선 여성 스포츠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들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그중 흥미롭게 봤던 만화는 <안녕, 나의 크라머>입니다. 흔히 <슬램덩크> <하이큐> 등 큰 인기를 얻은 일본 청춘 스포츠 만화들이 남자 스포츠부를 다루고 있는 것에 반해 <안녕, 나의 크라머>는 여자 축구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녕, 나의 크라머>는 와라비 세이난 고교에 입학한 1학년 루키들이 ‘오합지졸’인 여자 축구부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남자 축구에 비해 비인기 종목이다보니 중간중간 아픈 과거가 등장합니다. ‘논짱(온다 노조미)’이 다닌 중학교엔 여자 축구부가 없어서 2배 열심히 연습했지만 한번도 시합에 나가지 못했던 이야기 등입니다.

<안녕, 나의 크라머>에선 다양한 개성의 여자 선수들이 등장합니다. 상대편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사디스트’이자 ‘음침녀’로 통하는 와라비 세이난의 1학년 루키 스오 스미레(왼쪽), 경기에서 21대 0으로 지고 나서 상대편 선수와 유치하게 티격대고 있는 소시자키 미도리. 애니맥스 플러스 공식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안녕, 나의 크라머>에선 다양한 개성의 여자 선수들이 등장합니다. 상대편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사디스트’이자 ‘음침녀’로 통하는 와라비 세이난의 1학년 루키 스오 스미레(왼쪽), 경기에서 21대 0으로 지고 나서 상대편 선수와 유치하게 티격대고 있는 소시자키 미도리. 애니맥스 플러스 공식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런데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이나 승부 서사는 여자 축구 만화라고 해서 여타 소년 스포츠 만화와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천방지축인 열혈 축구 바보 캐릭터부터 음침하지만 누구보다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 드라마 오타쿠, 얌전해보이지만 강단있는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어가는 인물 등 모두가 여자 선수라는 점 정도가 다르달까요.

이 작품에서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팀원들간의 ‘리스펙’보다도(그것은 기본이니까요) 각자가 서로의 개성과 못난 부분, 실수 등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열정, 노력들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선생님을 골탕먹이거나 서로 유치하게 티격대는 모습도 물론 큰 재미요소였습니다. 통상 소년 만화에서 청순하거나 완벽한, 단면적인 모습으로 벤치나 응원석에 있는 모습만 그려지는 여학생들이 제멋대로의 개성을 지닌 천방지축으로 등장하는 모습이 참 신선하더라고요.

이들의 삶을 여자라는 공통점 하나로 한데 묶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엔 이 ‘언니들’은 지나치게 천방지축이며 제멋대로고 자기 고집이 세고, 때론 경쟁적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뭉치들이네요.

온다 노조미: “여자애들은 축구를 즐기면서 하면 안되는거야? 미래가 어쩌고 책임이 어쩌고 하니까 갑자기 숨이 턱턱 막혀.” 코치: “여자축구 선수는 언제나 위기감을 가지고 뛰어. 노미 나오코라는 카리스마가 은퇴한 지 벌써 오래됐는데도 국민들은 어떻게든 국제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내길 원해[...]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저변을 넓히는 일이야. 축구 인구를 늘리는 게 축구 강국으로 만드는 최단 루트라고 난 생각하는 데 말이야.” -아라카와 나오시, <안녕, 나의 크라머> 중

■맺음말

<스우파>는 잘 만든 경연 프로그램입니다. 제작진은 자신의 커리어로 고뇌하고 연대하거나 혹은 경쟁하면서 각자의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춤과 이야기에 감동했습니다.

‘언니들’이 완벽하고 멋지게 무대를 꾸린 장면들도 물론 굉장했습니다만, 사실 <스우파>에서 제가 정말 좋아했던 장면들은 완벽하게만 보이는 댄서들이 실수를 하거나 장난꾸러기처럼 행동하고, 때론 평정심을 잃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호승심을 불태우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아 저렇게 완벽해보이는 사람들도 나처럼 소심하게 고민하고 화도 내고 실수도 하는구나’ 싶어서 위안이 되었달까요.

앞으로도 <스우파>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비판 혹은 찬사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여성, 그리고 더 많은 존재들에 대한 더 많은 좋은 이야기들과 그저그런 것들, 그리고 때로 나쁜 이야기들을 즐길 자격이 있으니까요.

“이제는 비웃음에 맞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위해 힘들게 싸울 필요가 없기 떄문에 더 유머러스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제 편집자들은 긴장이 조금 풀렸고, 유머와 예술, 재미, 관능을 다룰 여유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요“ -글로리아 스타이넘 (앨리너 와크텔 <오리지널 마인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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