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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링크) 11월 3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추가로 읽을만한 책과 글 소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의 글로 하나의 깊은 영감을 드리는 <인스피아>를 구독해 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은 할로윈이었습니다. 이번 할로윈은 위드 코로나에의 기대로 흥성이는 분위기였는데요. 지난해 할로윈 기사를 보니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코로나와는 별개로 매년 할로윈 즈음 등장하는 단골 기사들도 있습니다. ‘서양 명절’을 굳이 우리가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매년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특이한 옷을 입혀보내야 한다는 부담을 주는 괜한 소비주의 이벤트로 여겨지기도 하죠. 하지만 할로윈을 죽은 자를 기리는 명절로 생각한다면 꼭 특정한 나라만의 이야기라고만 단정할 필욘 없을 것 같습니다.

멕시코 망자의 날 행사에 해골 마스크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참가한 참가자들(왼쪽), 마다가스카르에서 죽은자를 기리기 위해 시체를 묘지에서 꺼내어 춤을 춘 뒤 다시 묻는 파마디하나 풍습 모습. 출처 게티이미지, 위키피디아

멕시코 망자의 날 행사에 해골 마스크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참가한 참가자들(왼쪽), 마다가스카르에서 죽은자를 기리기 위해 시체를 묘지에서 꺼내어 춤을 춘 뒤 다시 묻는 파마디하나 풍습 모습. 출처 게티이미지, 위키피디아

일단 할로윈 자체도 기원을 놓고 보면 켈트족 ‘이교도’의 명절이고요. 멕시코나 마다가스카르 등에도 귀신과 관련된 망자의 날Dia de los Muertos, 파마디하나Famadihana 등 죽은 자의 넋을 기리는 축제가 있습니다. 할로윈의 상징인 잭오랜턴은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을 주지만, 고유의 유령이나 죽은자를 기리는 의식이 하나도 없는 나라는 아마 없겠죠.

그런데 왜 산 자들이 오랜세월동안 죽은 자를 기리며 살아온 것일까요? 이번 레터에선 니콜라스 로저스의 <할로윈: 이교도 의식에서 파티로>,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귀신> 등을 읽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 있는 축제와 귀신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이야기 : 혁명 혹은 폭력

연구자님은 할로윈하면 가장 먼저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보통 피 흘리는 귀신이나 유령, 좀비가 떠오르실텐데요. 이런 으스스한 괴물들은 할로윈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할로윈이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생겨난 축제였기 때문입니다. 할로윈의 기원은 고대 켈트족의 서우인Samhain 축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훗날 기독교적 명절로 바뀐 것이 오늘날의 할로윈이라고 합니다.

서우인은 “여름의 끝”이라는 뜻인데요. 켈트족은 서우인엔 죽은 자들의 기운이 가장 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이승-저승을 막아뒀던 장막이 가장 얇아지면서 요정과 유령들이 문지방을 넘어다닐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정령들을 달래기 위해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죽은 영혼들이 한해에 딱 하루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역시 그리운 가족들이 있는 집이겠죠? 제임스 프레이저가 쓴 <황금의 가지>(1890)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고대 켈트족들 사이에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날의 밤엔 오래 전 이 세계를 떠났던 영혼들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와 벽난로에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사랑하는 친지들의 환대를 받기 위해 그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니콜라스 로저스가 쓴 <할로윈: 이교도 의식에서 파티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해온 할로윈의 역사를 잘 그려낸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축제는 반드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산 자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로저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화려한 게이 할로윈 코스튬 퍼레이드 장면을 인상깊게 본 경험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혼란에 빠지죠. 할로윈의 기원을 아무리 관대하게 살펴본다 해도 모니카 르윈스키(빌 클린턴과 불륜 관계였던 여성) 코스튬을 입은 게이 퍼레이드 참가자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었습니다. 확실히 저도 최근 할로윈에서 오징어게임이나 엘사, 마블 히어로 복장이 유행이라는 것을 듣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자는 죽음과 추모에 대한 축제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서우인부터 영국, 미국 등에서 역사적으로 할로윈 축제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왔는지를 넓게 추적합니다.

사실 할로윈의 기원을 따져보면 거의 1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 같은 할로윈 이벤트가 정착된 것은 불과 수십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할로윈의 대표적인 상징인 ‘호박머리 괴물(잭오랜턴)’도 원래 과거 아일랜드에선 순무로 만든 것이었지만 할로윈 전통이 19세기 이후 북미 지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미국에서 구하기 쉬운 호박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과거 아일랜드에서 순무로 만들었던 할로윈 가면의 모습(왼쪽), 18세기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즈가 쓴 ‘할로윈’ 시의 삽화. 즐겁게 남녀가 어울려 먹고 마셨던 서민들의 축제상이 잘 드러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과거 아일랜드에서 순무로 만들었던 할로윈 가면의 모습(왼쪽), 18세기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즈가 쓴 ‘할로윈’ 시의 삽화. 즐겁게 남녀가 어울려 먹고 마셨던 서민들의 축제상이 잘 드러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유령으로 분장한 아이들이 집들을 돌아다니며 ‘사탕 주면 안잡아먹지!’를 외치는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거지들의 가정방문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16세기 희극 <베로나의 두 신사>에선 “할로마스(Hallowmas·할로윈의 과거 명칭)의 거지처럼 소란을 부리는”이란 대목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겨울을 앞둔 할로윈에 가난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돈이나 먹을것을 얻으러 다닌 풍습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할로윈은 그 시대 사람들의 입맛대로 바뀌어왔습니다. 저자는 ‘단체 헌팅’이 되어버린 18세기 영국 할로윈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과거엔 할로윈이 주로 기독교적 전통에 따라 성인들의 죽음을 기리는 축제였지만 역설적으로 삶의 절정을 노래하는 명절이 된 것입니다.

18세기에 이르러 할로윈은 구애 의식이라든지 구애 게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삶에 대한 기대가 높아가는 세속적인 환경에 적응했다. 이런 변화는 중세 시대의 ‘메멘토 모리’를 할로윈에 적용시킨 것에서도 드러난다. ‘다가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는 관, 해골, 모래시계 등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물체들로 상징된다. 할로윈의 이러한 변화에 따르면, 자정에 젊은 여성이 거울에서 보는 운명의 얼굴이란 죽음의 얼굴이 아닌 미래의 남편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Nicholas Rogers, <Halloween>(이하 동일)

20세기에 미국으로 넘어온 할로윈은 ‘장난’에서 ‘범죄’로 바뀌어가는데요. 저자는 이는 할로윈이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과 도시가 폭력적으로 변화해갔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할로윈은 죄가 없고 사람이 문제라는 거죠.

20세기 초반 미국에서의 할로윈 이벤트는 그저 짓궂은 장난 정도였습니다. 장난꾸러기 소년들이 행인에게 밀가루 폭탄을 뿌리거나 대학생들이 기숙사 건물에 한바탕 낙서를 해놓는 등이었죠.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디트로이트의 ‘악마의 밤’ 방화 사건, 어린이들에게 마약이나 면도날이 든 과자를 주어서 다치게 한 사건 등이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1960~70년대에 도시가 풀리지 않는 인종, 사회 갈등으로 인해 점점 더 안전하지 않고 환대적이지 않은 공간이 되면서 어린이 등 모든 도시 사람들에게 있어 할로윈에 대한 이미지는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뉴욕 빌리지 할로윈 퍼레이드(왼쪽). 오른쪽은 디트로이트에서 할로윈 전날 발생한 화재를 소방관들이 진압하고 있는 모습. 10월 30일에 워낙 많은 방화, 사건사고들이 일어나면서 할로윈 전야엔 ‘악마의 밤’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출처 Voss Events, AP

뉴욕 빌리지 할로윈 퍼레이드(왼쪽). 오른쪽은 디트로이트에서 할로윈 전날 발생한 화재를 소방관들이 진압하고 있는 모습. 10월 30일에 워낙 많은 방화, 사건사고들이 일어나면서 할로윈 전야엔 ‘악마의 밤’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출처 Voss Events, AP

1970년대부터 할로윈 행사가 코스튬 파티, 게이 퍼레이드와 결합되면서 할로윈은 마치 ‘혁명’ ‘변혁’의 상징이 되는 듯 합니다. “남자는 여자처럼, 여자는 남자처럼” 입거나, 할로윈 퍼레이드에서 ‘어떠한 복장’을 착용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기도 하죠. 할로윈이 해방의 상징이 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할로윈을 맞아 범죄자들은 무고한 시민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할로윈과 관련된 영화 속 살인마를 모티브로 한 범죄, 방화들이 무수하게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말합니다.

할로윈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인 유머와 놀이는 패러디의 힘을 가질 순 있으나 그것 자체가 체제전복적인 것은 아니다. 되레 할로윈이 갖는 반전의 힘은 때로 치명적으로 반사회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만약 할로윈이 문화적 다양성과 유연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사회의 편협한 공격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할로윈은 약자들에 의해 혁명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약자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페스티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카니발처럼 말이다.

비록 이 책 속 내용은 할로윈이 우리나라에서 갖는 양상이나 의미와 차이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20세기가 이후에서야 ‘남의 나라 명절’을 수입해 온 미국에서 할로윈이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커다란 거울이 되는 과정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계기였습니다.

항상 어떤 현상의 겉모습보다는 그 안의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가장 혁명적인 것이 때로 가장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 말이죠.

■귀신 소동이 신문에 단골 출연하던 시절

“경상북도 영일군 윤대석 군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가 태어나 한 살이 되던 해 몸이 병약하여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었다...그러던 어느날 자식을 팔면 낫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근처 운제산 위의 커다란 바위에다 치성을 드리기로 했다.”

“두창이 완치되면 다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대나무 세개로 짠 판에다 짚으로 산 밥을 올려놓은 것을 들고 환자의 집 주위를 돌면서 기도한다”

이 이야기들이 어디에 나온 것일까요? 오래전 옛날 민담, 설화집에 나온 내용같이 보이지만, 사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일제 시대(1920년대)에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묘한 이야기들입니다. 요새는 누군가 진지하게 도깨비나 귀신 등의 이야기를 하면 “어디 아프니?”란 질문과 함께 타박을 받았겠지만 머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진지하게 귀신의 존재를 믿고 귀신을 피하거나 달래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죠.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귀신>(1929)은 당대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간 귀신 설화, 신앙 등을 폭넓게 조사한 책입니다. 사실 할로윈을 이야기하면서 이 책을 골라든 이유는 한국 버전의 잭오랜턴이나 폴터가이스트를 찾아보고 싶다는 비교적 얕은 호기심에서였습니다만, 이 책에서 역시 <할로윈>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귀신 이야기를 통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문화를 이해하고 민족사상을 이해하기 위해하려면 반드시 그 민족의 공통적인 신앙현상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에 당시 민간에 전승돼온 전국 각지의 귀신, 미신, 대처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읍니다. 이 책은 하나의 주장을 만들어내려는 책이라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풍습들을 모아 전하려는 자료집의 성격이 강한데요. 그런만큼 당시 사람들의 삶과 슬픔, 걱정거리, 믿음 등을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KBS <전설의 고향> 속 효성 깊은 딸의 귀신(왼쪽). 과거 사람들은 많은 이들을 괴롭혀온 천연두, 장티푸스 등에 역병귀신 등의 이름을 붙여 달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얼마든 ‘IMF 귀신’도 있을 수 있었겠다 싶긴 합니다. (출처 KBS 전설의고향 영상 갈무리·경향신문 1998년 3월 12일자)

KBS <전설의 고향> 속 효성 깊은 딸의 귀신(왼쪽). 과거 사람들은 많은 이들을 괴롭혀온 천연두, 장티푸스 등에 역병귀신 등의 이름을 붙여 달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얼마든 ‘IMF 귀신’도 있을 수 있었겠다 싶긴 합니다. (출처 KBS 전설의고향 영상 갈무리·경향신문 1998년 3월 12일자)

첫번째는 모든 귀신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귀신이나 괴물에 대한 이미지처럼 무시무시(?)하지는 않고, 되레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예로 이 책엔 정5품 호조정랑 이사문의 집에 10년 전 죽은 고모의 귀신이 든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용재총화>).

이 귀신은 분명 외모만 놓고 보면 무시무시한 귀신입니다.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리 아래가 살이 없이 까맣게 말라붙은 뼈만 남아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귀신이 하는 나쁜 짓이라곤 “얌전히 있으면 좋을 터인데, 사람들이 하는 작업에 일일이 간섭을 하고 지휘를 한”다든지 “아침저녁의 식사는 물론이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달라고 하며 만약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몹시 화를 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고모 귀신이 귀찮아진 이사문은 그를 물리치기 위해 기도, 부적 등 온갖 수를 다 쓰지만 오히려 그가 병을 얻어 죽고 마는데요. 귀찮음만 조금 감수했다면 어찌저찌 쭉 같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고려시대 담양 연동사에서 공부를 하던 이영간이라는 사람이 만난 너구리 귀신도 귀여운 편인데요(<동국여지승람>). 이곳 승려가 술을 빚는 족족 사라져서 이영간이 누명을 쓰고 승려에게 매질을 당하는데, 분한 마음에 그는 한동안 술독을 몰래 지켜봅니다. 그러자 너구리 한마리가 나와서 몰래 술을 훔쳐먹는 것을 발견하는데, 살려주는 대가로 비술을 알려주겠다고 해서 이후 그는 신묘한 비술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 말까지 쓰고 사람에게 신묘한 비술을 마음대로 하사할 수 있는 너구리 귀신이 한다는 나쁜 짓이라는 게 고작 승려가 빚은 술을 몰래 먹는 정도라니요.

두번째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들도 파고들다보면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 책엔 귀신이나 미신에 얽힌 신문 기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중 1912년 경성일보(10월 24일자)엔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경북 선산군에 사는 신원일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가 1906년 맏며느리 장우임을 들이고 나서부터 수년간 이 집에는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냥 방에 앉아있는데 밖에서 돌이 날아와 사람을 맞추는가 하면 집에 몇번이고 불이 붙기도 하죠. 이에 이상하게 여긴 순사가 탐문 조사를 했는데, 알고보니 시어머니가 죽고 나서 며느리를 겁탈하려 하는 시아버지의 행동이 반복되자 장우임이 무당과 짜고 귀신이 한 짓처럼 속여 겁을 먹게 해 겁탈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이 밝혀지자 장우임과 무당은 각각 방화죄와 사기죄로 검거되는데, 정작 벌을 받을 사람만 빼고 벌을 받는 세태를 보며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밖에도 경성일보엔 경북 지역의 이극규라는 자가 3살 난 아들이 백일해에 걸려 죽어 천마의 희생에 바치고자 아들의 시신을 강변의 고목에 묶어 매달아 놓은 것을 헌병이 발견해 시체 유기로 추적한 사건이나 강가에서 갓난아기의 시신이 발견돼 곧장 경찰이 출동했는데 알고보니 액막이 인형이었다는 해프닝 기사 등도 있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생과 사의 세계를 넘나드는 귀신의 존재가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민간 신앙들을 무조건 부끄럽고 바보같은 것으로만 여길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할로윈이 비록 이교도적 신앙에서 비롯된 축제이지만 오랜 역사를 거쳐오며 각 시대와 문화 속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듯, 귀신에 대한 생각들 역시 당대 사람들의 솔직한 욕망과 감정들을 잘 비춰주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꺼림이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고려시대 문종은 원혼을 진정시키기 위해 직접 나섭니다. 극성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원혼이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이었죠.

원혼이 전염병을 몰고온다는 믿음은 지금 시선에선 말도 안되는 미신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결국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과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고, 죽은 자들의 넋을 달래는 것은 비단 귀신이 두려워서만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른 이치로 향하게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니까요. 문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치는 순양純陽만이 아니고 음陰이있고 만물은 길이 살지 못하며 죽음이 있으며[...]신이 있으면 반드시 귀가 있는 법이다[...]수화水火는 본래 사람을 기르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귀신은 사람을 돕는 것이지만 때로는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자는 수화가 아니라 곧 사람인 것이며, 사람을 해치는 자도 귀신이 아니라 역시 사람 자신인 것이다[...]지금의 ‘여기’는 실상 귀신이 해를 지음이 이 나라, 도리어 사람이 스스로 그 재앙을 지은 것이다.”-문종실록 중

■맺음말

올해 할로윈 이후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다 서로 상반된 두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연구자 여러분들도 아마 최근 기사로 접하셨을 일본 지하철에서의 흉기 난동 사건이고요.

-조커 복장 20대, 도쿄 전철에서 칼부림 방화···17명 부상

하나는 40년간 매년 할로윈에 아이들을 위해 집을 만화영화 속 놀이동산처럼 꾸미고 많은 사탕을 준비해온 어느 한 노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미끄럼틀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사탕을 전달했는데요. 아무리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를 막아도 어린이들의 삶을 즐길 권리, 행복할 권리만큼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 가지 장면은 어찌보면 모순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삶이 레몬을 준다면 그걸로 누군가는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것을 바닥에 팽개칠 수도 있겠죠. 값비싸고 유행타는 코스튬을 자랑하기 위한 경쟁도 단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역시 ‘서양 명절’의 탓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할로윈 코스튬쪽이 취향입니다만..일본에서 열리는 ‘보통 할로윈(地味ハロウィン)’에 등장한 인물들의 사진으로, 왼쪽은 “편의점에서 안주를 사려고 했는데 모르고 강아지 간식을 사서 화가난 외국인”, 오른쪽은 “정상체온인 사람”입니다. 데일리포털, 트위터 @YOSHITERUKAMENN

개인적으론 이런 할로윈 코스튬쪽이 취향입니다만..일본에서 열리는 ‘보통 할로윈(地味ハロウィン)’에 등장한 인물들의 사진으로, 왼쪽은 “편의점에서 안주를 사려고 했는데 모르고 강아지 간식을 사서 화가난 외국인”, 오른쪽은 “정상체온인 사람”입니다. 데일리포털, 트위터 @YOSHITERUKAM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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