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소통 없어…유가족끼리 위로, 이상민 장관·윤 대통령 언행에 분노”

윤기은 기자

이태원 참사로 외동딸 잃은 이성환씨의 한 달

이성환씨(56)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하나뿐인 딸 상은씨를 잃었다. 그는 지난 22일 참사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서 좋은 소식이 왔는데 넌 갈 수가 없구나. 너무 원통하고 아까워”라며 흐느꼈다. 1997년 6월29일생인 상은씨는 지난 8월19일 졸업 후 9월1일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돼 이태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고 이틀 후 입사를 희망하던 회사에서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이씨를 만나 ‘참사 한 달’에 대해 물었다. 이씨는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서울시, 용산구청, 주민센터 등을 수소문한 끝에 참사 발생 12시간30분 만에 상은씨의 시신을 찾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례비 지원과 심리치료 지원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유가족의 의견을 충분히 묻거나 세심하게 챙기지는 않았다. 다른 희생자 가족과의 모임도 알음알음 이뤄졌다. 이씨에게 지난 한 달은 윤석열 대통령의 ‘무응답’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짓말’에 분노한 시간이었다.

■ “방에 상은이가 없었다…그때부터 지옥이었다”

이씨 부부는 10월29일 등산을 마치고 오후 10시쯤 강원 동해시의 한 숙소에서 잠이 들었다. 간밤에 사고 소식을 몰랐던 부부는 이튿날 오전 6시30분쯤 뉴스를 보고 참사가 일어난 사실을 알게 됐다. 전날 밤 상은씨가 이태원으로 간다는 얘기를 들은 모친은 오전 6시39분 휴대전화에 ‘사랑하는딸’로 저장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경찰이 ‘분실물을 보관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혹시 휴대전화를 분실하고 집에서 자고 있을까’ 하며 이웃에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줬지만 ‘방에 상은이가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지옥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딸이 사라지고 지옥 펼쳐져…매일 108배 하며 안식 기도

이태원에서 하나뿐인 딸 상은씨 잃은 아버지 이성환씨의 한 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이상은씨의 부친 이성환씨가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이상은씨의 부친 이성환씨가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참사 발생 이후 12시간30분 지나서야 딸 시신 찾아
정부 지원, 겉치레 그쳐…유족 간 소통 주선도 안 해
국민의 뜻 살피겠다던 윤 대통령, 뭘 했는지 답해야

이씨 부부는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올라오는 길에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씨 휴대전화에 남은 10월30일 통화목록에는 오전 8시3분부터 이촌2동 주민센터에 1회, 용산구 실종자 접수신고처에 12회, 한남동 주민센터에 7회, 서울시 실종자 접수신고에 5회, 다산콜센터에 6회 전화를 건 흔적이 남아 있다. 상은씨 모친도 한남동 주민센터에 10회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전화가 모두 먹통이었다”고 했다.

쉬지 않고 서울로 달려온 이씨 부부는 오전 10시 넘어 한남동 주민센터로 가 실종자 신고를 하고 시신이 가장 많이 옮겨진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사상자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씨 부부는 병원 내부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오전 10시47분 동대문경찰서에서 이씨 모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문 감식 결과 이곳에 있는 시신이 상은씨로 확인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신이 안치된 장소를 안내했다. 소방에 첫 압사 신고가 들어온 10월29일 오후 10시15분으로부터 12시간32분 지난 뒤였다. 상은씨는 동대문구에 있는 한 병원에 안치돼 있었다. 사망진단서에는 ‘사망시각 12시00분, 원인 미상’으로 적혀 있었다.

참사 이튿날 오전까지 사상자들의 인적사항 파악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 유관기관 사이에 실종자 접수 체계도 공유되지 않았다. 서울시 다산콜센터 녹취록을 보면 상담원은 10월30일 오전 4시44분까지 “실종자와 관련해 고지받은 게 없다”고 했다. 이씨와 같은 실종자 가족이 연락이 두절된 식솔을 찾겠다며 순천향대병원에 몰린 이유다.

■ 요식에 그친 정부 지원…유가족 간 만남도 ‘셀프’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장례식장을 잡은 뒤 한 지자체 직원이 빈소에 찾아왔다. 경황이 없던 이씨는 이 직원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이씨의 동서가 장례비 지원 소식을 전달받았다. 영등포구 보건소에서도 “힘드시겠지만 연락주면 도와주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러나 이씨는 보건소의 심리 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회사를 통하면 연계된 10곳의 심리 프로그램 중 자신의 상황을 잘 진단해주는 곳을 고를 수 있었다. 이씨는 “11월4일 보건소 전화 이후 정부 관계자의 연락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정부는 유가족과 소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가족 간 소통도 주선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다른 유가족과 만났다. 이씨는 참사 다음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기자가 유가족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알려줘 민변 측에 직접 e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이씨는 “유가족들은 알음알음 민변을 찾아왔다”며 “다른 방법은 없었다”고 했다.

유가족 간 연결이 어려웠던 이유는 참사 이튿날 시신을 뿔뿔이 나눠 이송한 탓도 있다. 소방당국은 10월30일 오전 2시56분 시신 46구를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으로 옮겼다가 수도권에 있는 병원들로 하나둘 재이송했다. 참사 충격으로 뉴스조차 볼 수 없었던 유가족의 상황도 작용했다. 이씨는 “참사 1~2주간은 ‘참사’라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벌렁 해서 뉴스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19일 유가족 2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서로 사연을 얘기하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이씨는 “유가족 간 모임이 없었더라면 슬픔도 개인적으로 다 품고 갔을 것”이라며 “혼자서 감당하기에 슬픔이 너무 컸고, 간담회를 통해 위로받았다”고 했다. 그간 뉴스와 담을 쌓았던 이씨는 모임을 통해 참사 당일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고 책임자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도 알게 됐다.

행안부 이태원 원스톱 통합지원센터는 뒤늦게 유가족 협의체 구성에 들어갔다. 몇몇 지자체는 이 통합센터 명의로 ‘유가족 30여명이 요청한 유가족협의회 구성,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장소 제공’에 대한 의견을 밝혀달라고 유족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어 지난 24일 일부 유가족에게 ‘24일 오후 6시까지 연락이 없는 경우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이상은씨의 부친 이성환씨가 2020년부터 2년 반 동안 딸을 위해 만든 아침식사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참사 당일 이씨는 딸을 위해 황태미역국을 차려줬다고 말했다. 성동훈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이상은씨의 부친 이성환씨가 2020년부터 2년 반 동안 딸을 위해 만든 아침식사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참사 당일 이씨는 딸을 위해 황태미역국을 차려줬다고 말했다. 성동훈 기자

■ ‘진정한 사과’ 없는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이튿날 사고수습본부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말이 이씨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혔다. 이씨는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용산경찰서 인력이 대통령 경호에 집중됐고, 핼러윈 축제 안전 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참사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씨는 이 장관이 “유가족 명단을 모른다”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의한 사람들에 한해 유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하자 “행안부에서는 연락처는 물론이고 명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행안부는 지난달 31일 서울시로부터 유가족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정리한 자료를 받은 터였다.

이씨는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이 보인 행태에도 분개했다. 이씨는 “위패나 영정도 마련하지 않은 분향소로 간 게 ‘언론플레이’로 느껴졌다”며 “유가족을 모아놓고 ‘이런 참사에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하는 등 충분히 설명했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2일 유가족 기자회견이 열린 날 대통령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의한 일괄 국가배상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유가족이 보상금만 바라는 것처럼 비추며 기자회견을 덮어버리려 한 것 같았다”면서 “취임 100일 기념사에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을 살피겠다’고 해놓고 국민이 이렇게 탄식하고 있는데 뭘 하고 있는지, 뭘 했는지 답을 않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국정조사와 수사를 통해 국가가 참사에 제대로 대응했는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는지 규명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소통 없어…유가족끼리 위로, 이상민 장관·윤 대통령 언행에 분노”

■ “아직도 그리운 내 딸, 상은이”

“상은이가 살아 있을 때와 없을 때로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2주간 회사를 쉰 이씨는 이달 14일부터 다시 출근했다. 하지만 가슴에 사무치는 그리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씨 부부는 매일 아침 출근 전 108배를 드린다. “딸이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기 위해서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상은씨 사진을 보고 술 한 잔을 올린다.

딸의 방 한쪽에는 상은씨가 생전 자신의 인생계획을 그려놓은 쪽지가 붙어 있다. 왼쪽부터 ‘AL(영어시험 등급)’ ‘TOEIC 945(영어시험)’ ‘MOS Master(컴퓨터 자격증)’ ‘AICPA FAR(미국 공인회계사 시험 과목)’ ‘BEC(영어 자격증)’ ‘4학년 ALL 4점↑(학점)’ ‘계절학기’ ‘졸업’ ‘AUD(미국 공인회계사 시험 과목)’ ‘취업’이라고 적혀 있다. 쪽지 아래에는 상은씨가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과 부모와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납골묘에 묻고 비석 하나 세우고 왔습니다. 집에 오니 (참사 전) 자기 방부터 화장실까지 청소를 깨끗이 해놨더라고요. 얘가 갈 줄 알았나 싶기도 하고. 오랜 기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아침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왔고, 입사 전 두 달 시간이 남아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 만나러 다녔는데…. 이태원 현장에 갔는데, ‘저 좁은 골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비명을 지르며 갔을까’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고요.”

이씨 부부는 주말마다 상은씨가 묻혀 있는 세종시 선산에 찾아간다. 이따금 친구와 가족들이 이씨네 집을 찾아 부부를 위로하고 밥을 같이 먹는다. 친구가 보낸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 시구로, 이태원 1번 출구 앞 현장에 놓은 위로의 편지들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씨는 휴대전화 속 달력을 보여주며 “상은이에게 2년반 동안 아침밥을 663번 해줬다. 마지막 반찬은 황태 미역국이었다”며 “같이 지내며 밥이라도 해줬구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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