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땐 이렇게 살 줄 몰랐다”…복지·청년 문제가 불러낸 老동자

이혜리·강한들·고희진 기자

①순자씨는 곳곳에 있었다

경비로 일하는 노인이 아파트를 걸어가는 모습. 이준헌 기자

경비로 일하는 노인이 아파트를 걸어가는 모습. 이준헌 기자

“육십을 넘기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나의 직업 분투기는 치열했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청년을 호명하는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60대 여성 이순자씨가 쓴 글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회자됐다.

글은 62세에 취업을 하게 된 이씨가 수건 정리·백화점 청소·요양보호사·장애인 활동보조인 등 각종 일자리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노인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씨뿐일까.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일하는 노인의 비율은 계속 높아진다. 통계청의 지난달 고용동향 자료를 보면, 60세 이상 인구 1278만명 중 44.8%인 572만명이 일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2774만명)의 20%다. 반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사회는 동정 어린 시선에서 노인을 복지 시혜의 대상으로는 다뤄왔지만, 노인의 노동을 직시하진 않았다. 일하는 노인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는커녕 노동법 보호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노인들이 택배 일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노인들이 택배 일감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향신문은 지난 9월부터 60세 이상 일하는 노인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청소·경비·택배·요양보호사·간병·대리운전·공공근로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노인들이다. 이들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어떤 삶의 궤적 속에서 현재의 노동을 하게 됐는지를 던졌다.

노인들은 대체로 생계 때문에 일한다고 했다. 국가에서 주는 연금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저임금 노동을 전전하다 노년까지 이어진 경우가 있었고, 젊을 때 안정적 일자리에 종사하다가 어느 순간 빈곤에 빠져 노년에 갑자기 일자리를 찾은 경우도 있었다. 동시에 노인이 일하는 이유는 생계 때문만이 아니었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면서도, 사회 속에서 역할을 찾고 타인과 소통하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노인 일자리는 청년 일자리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자주 다뤄졌지만, 노인이 일하는 배경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인 자녀가 쉽게 자립하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신이 자녀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돈을 벌러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노인은 언젠가는 청년이었고, 청년은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인들은 “나도 젊을 때는 나이 들어 이렇게 살 줄 몰랐다”고 했다. 또 그들은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아놓은 돈이 없어 일해야 하고,
집에만 있기 싫어서 일하고 싶다”

찬 바람으로 체감온도가 0도까지 내려간 지난달 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9번 출구 앞 길목에는 노인 십수명이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줄을 지어 앉았다. 동대문종합시장에서 나오는 택배 일거리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복지 차원에서 노인에게 제공되는 지하철 무임승차를 이용해 직접 물건을 배송한다. 동대문에서 가까운 남대문까지 배송했을 때 책정되는 돈은 3000원이다. 강남이나 서울 외곽으로 가면 1만원까지도 쳐준다. 여기서 일거리를 나눠주는 ‘사장’은 수수료로 30%를 떼간다. 혹여나 배송지가 무임승차할 수 없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면 버스비는 노인이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왜 이곳에 나왔느냐고 묻자, 조현철씨(83·가명)는 “돈이 없어서 나오지, 왜 나오겠느냐”고 했다. 이날 오전 강북 쪽 한 군데에 배송을 하고 왔다는 그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15분 거리를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이 수수료를 떼면 5600원이다. 옆에 섰던 장태환씨(78·가명)는 “자식들이 변변한 직장이 없으니까, 용돈을 못 얻어쓰니까 나온다”며 “여긴 내가 어린 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상가들이 망해 요즘엔 택배일로 하루 3만원 벌기 힘들다고 했다.

■“연금으론 못 살아, 일할 수밖에”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 55만여원
노후 적정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
그나마 받는 수급자 비율도 40%뿐
노인 노동 이유, 대부분 경제 문제

노인이 됐을 때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있다. 그러나 젊을 때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충분히 납입하지 못한 경우에는 노인 시기에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기초연금은 30만원에서 재산과 소득을 따져 지급액수를 깎는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인당 월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55만1892원이다. 국민노후보장 패널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노후 적정생활비로 개인은 월 164만5000원, 부부는 267만8000원이 필요하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기초연금을 감안하더라도 현저히 적은 액수다. 국민연금 수급률은 40%대로, 반대로 말하면 60%는 국민연금에서 배제돼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서 고령층 인구 중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68.1%(1005만9000명)나 됐는데, 이 같은 노동 욕구 대부분이 연금으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젊은 시절 음식점과 술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던 최종원씨(75·가명)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장사가 되지 않아 사업을 처분했다. 2000년대 중반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를 시작으로 현재는 병원에서 숙직을 한다. 노인의 일은 주로 사람들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최씨는 병원 직원들이 퇴근할 때 출근하고, 그들이 출근할 때 퇴근한다. “모든 게 끝나면 병원 이곳저곳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해요. 간호사든 의사든 낮에 일하고 몸만 빠져나가니까 밤에 점검을 해야죠.” 아침엔 직원들 출근 전 사무실 불을 켜고 병원의 하루를 준비한다.

최씨가 일을 하는 이유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그는 덜 먹고, 덜 써도 연금만으로는 생활할 턱이 없다고 했다. 국민연금 14만원, 기초연금 24만원을 받는다. 버는 대로 자녀들 교육에 쓰다보니 저축해놓은 돈은 없다. 병원에서는 월급으로 160만원가량을 받는데, 급여도 다른 일자리에 비해 많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은 아직도 일하는 최씨를 부러워한다고 했다. “젊어서는 돈을 모아놓은 게 있었으니까 조금씩 써서 몰랐는데 돈이 떨어지니까 앞이 정말 깜깜하더라고요. 나이는 먹었지, 지금 여기라도 당장 그만두면 다음달부터 생활비가 없어요. 저축해놓은 게 없으니까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의 노인들은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자녀 본인들도 살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기대느냐” “경제적으로 도와준 것 하나 없는데 어떻게 돈을 달라고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오히려 부모가 노인세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자녀가 자립하지 못해 경제적 책임을 여전히 부모가 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최근 택배일을 시작한 강상환씨(66·가명)는 “우리 큰애도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요즘 정규직 되기가 어렵잖아요. 제가 해준 게 없으니까 아이가 무엇인가를 더 준비해야 되잖아요. 젊은이들 경쟁은 또 얼마나 치열한가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한 직업으로 10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것을 알면서 아이들에게 기댈 수는 없죠.”

조씨는 택배가 아니면 국민연금 50만원에 기초연금 30만원이 전체 수입이다. 월세 50만원을 내면 빠듯하다. 젊었을 때 기민하게 재테크로 집 한 채 사놓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할까. “30~40년 후를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청년들은 생각하겠죠. 지금의 노인들도 그 나이 때 이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데 그게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다들 열심히 살았는데 어떤 사정에 의해서 생활이 후퇴돼요. 노후세대의 격차는 심해지고요.”

■한번 정상 궤도 벗어나면 회복 어려워

젊은 시기 안정된 직업 가졌어도
정상궤도 벗어나면 노후까지 파장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잃은 뒤에
뒤늦게 아내가 취업하는 경우 많아

젊은 시절 안정된 일자리에 종사했더라도 사업 실패나 사고 등 어떤 계기를 통해 한번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면 그 파장은 노인 때까지 이어진다. 공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하고 퇴직한 성우환씨(68·가명)는 빚보증을 서고 주식을 해 돈을 날린 뒤 별도의 노동소득이 필요한 환경이 됐다. 20년 전 산 집에서 살고, 공기업 경력으로 연금 100만원가량이 나와 다른 노인들에 비해 사정이 낫지만 그는 월급 180만원을 받는 아파트 경비일을 한다. 생활비에 보험료, 부조금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일을 관두면 생활이 어려워요. 보험료도 많이 나가고, 전기·수도료 등 다 월급으로 내거든요. 누구 결혼한다면 부조금도 내야 하고요. 다른 사람들은 10만원, 20만원 내는데 나는 5만원만 내죠. 경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하면 30명 중 10명은 경비를 해요.”

주로 돈을 벌어 가정을 지탱하던 남편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정 전체의 부담은 아내에게 쏟아졌다. 여성들이 뒤늦게 취업에 나서는 데 이런 이유가 많았다. 건물 청소를 하는 나연심씨(72·가명)는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아지면서 뒤늦게 일에 뛰어든 사례다. 20대 때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한 나씨는 47세에 취직을 했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다 보증을 잘못 서 빚을 졌고, 택시운전을 했지만 코로나19로 수익이 별로 없었다. 나씨가 받는 연금이 55만원, 남편까지 합치면 120만원에 청소로 버는 150만원 정도가 한 달 소득이다.

김민숙씨(69·가명)는 50대에 처음 일을 시작했다. 결혼한 뒤 줄곧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엔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을 때 직장에 다니지 않고 전업주부를 했거나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특히 연금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 김씨도 받을 수 있는 것은 기초연금 30만원뿐이었다. 지인을 통해 병원에서 환자를 보살피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것은 다 못해도 이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간병일을 시작했다. “남편 연금이 있다든지,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사실 일할 나이가 아니죠. 장가 안 간 아들과 같이 살고 있어요. 자식에게는 바라지도 않아요. 젊었을 때부터 번 것을 저축해놓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벌어서 생활비 쓰기 바쁘고 애들 뒷바라지하기 바쁘니까 돈을 모으지 못했어요. 벌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온 거예요.” 김씨는 일을 하고 싶은 것과,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숨을 쉬고 사는 동안 돈은 필요하니,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서 “건강할 때는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데 건강이 나빠져 아무것도 못하면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불안하다”고 했다. 노후에 노후를 대비하려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나 아직 멀쩡한데…집에 있으라니”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을 넘어선다.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일을 매개로 소통을 한다. 그런데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순간 그런 연결고리는 끊어진다. 고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어떤 노인들에게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시외버스·셔틀버스 등 운전을 주로 해온 김점수씨(80·가명)는 마지막 직장이던 백화점에서 ‘회원들이 나이 많으신 분을 불편해한다’는 말을 듣고 일을 그만뒀다. 그 후 ‘사람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그러다 노인들이 보따리를 들고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는 모습을 봤다. 지하철 택배였다. 그때부터 김씨도 택배일을 했다. 지금은 정부 일자리 사업인 공공근로를 한다. 도로 청소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도시락 배달 등을 하고 27만원을 받는다. 다만 공공근로도 경쟁이 있다. 신청자가 많아 재산과 소득을 따지고 기준에 못 미치면 탈락된다.

김씨가 일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손주들 용돈이라도 주고 싶은데 돈이 있어야죠. 집에 있으면 27만원이 나오나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할 수 있죠. 놀기도 답답해요. 평생을 아침에 밥 먹고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갈 데가 없으니까 집에만 있는 것 아니에요? 나가서 움직이고 싶어요. 나 아직 멀쩡한데….” 김씨는 “임금을 많이 안 줘도 되니까 노인들이 할 수만 있다면 일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대화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현숙씨(75·가명)는 대학과 병원에서 16년간 청소노동을 한 뒤 현재는 빌딩 청소를 하고 있다. 물론 돈이 필요해 하는 일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청소를 평생 했던 것이라서, 손을 놓으니까 너무 할 일이 없더라고요. 할 일이 없으니까 인생 다 산 것 같고. 힘이 있는 동안은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하루 종일 일하는 건 힘들고, 2시간씩만 일하면서 한 달 60만원대 월급을 받는다. 누군가에겐 적은 돈이지만 성씨에게는 가치 있는 돈이라고 했다.

청소 업무라고 쓸고 닦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창틀을 닦을 때와 엘리베이터를 닦을 때 방법이 다르고, 계절마다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따로 있다. 성씨는 수십년 청소를 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저는 떳떳하게 일해요. 이만큼씩이라도 번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도 젊었을 때는 ‘노인네들 집에나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늙어봐야 알아요. 나도 안 늙을 줄 알았거든요. 저는 몸 닿는 데까지는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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