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난민을 생각하다

①난민 인정률 1.1%, 예산은 24억원뿐…‘준비 안 된 대한민국’

유선희·이홍근·민서영 기자

지난해 지원 예산 24억원

심사 절차 비용이 대부분

바늘구멍 통과한 난민도

제대로 된 정착금 못 받아

예멘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지로 흩어진 난민들 중 500여명이 2018년 제주도로 입국했다. 그중에는 징집을 거부하고 망명을 택한 B씨(32)도 있다. ‘총을 겨눠야 하는 일’은 B씨에게 고향을 등져야 할 만큼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부인과의 생이별을 감수하고 한국행을 택한 B씨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난민 심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일부터 시작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소통에 어려움이 컸지만 양식장, 용접소, 방수업체 등 주어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도적 체류자’ 신분인 B씨는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해 가족을 한국으로 부를 수 없다. 올해 초 자궁암 수술을 한 부인 걱정이 가장 크다. B씨가 현재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푼이라도 아껴 고국에 보내주는 것뿐이다. 일자리를 옮길 때마다 ‘자격외 취업허가증’ 도장을 받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12만원은 큰 부담이다.

정치적·종교적 박해를 피해 대한민국을 찾은 난민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가 어렵고, 그래서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된다. 위험한 업무를 하다 다쳐서 일자리를 얻기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25일 아프가니스탄 현지인과 그 가족 390여명이 26일 한국에 입국한다고 밝혔다. 과연 우리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돼 있을까. ‘무일푼’으로 온 그들에게는 우선 최소한의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관련 예산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난민과 관련해 편성된 예산은 24억6700만원으로, 정부의 총예산 513조5000억원의 0.0005%에 그쳤다. 최근 3년간 난민 지원 예산은 2018년 19억9400만원에서 2019년 21억9200만원, 지난해 24억6700만원으로 조금씩 느는 추세이지만, 예산 절반 이상이 난민 심사 시 통역비나 조사관 활동비 등 ‘심사 지원’에 맞춰져 있다.

이상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입국 초기 신청서를 받는 단계에서부터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며 “현재는 처우 지원의 모든 면이 불충분한 수준으로, 난민 신청자들이 하루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기회를 확대하는 쪽으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1%에 불과하다. 어렵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도 제대로 된 정착금은 주지 않는다. 재정착난민제도를 통해 입국한 난민에 대해 주택 임차보증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보증금이 2년 뒤 국고로 회수된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인도적 체류자들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 당장 경제적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이주 인권 가이드라인 모니터링 결과 보고회’에서 발표한 ‘인도적 체류자의 취업과 노동’ 연구에 따르면, ‘취업활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32명 중 15명은 설치·정비·생산직에 종사했고, 10명은 미용·숙박·음식·청소 일을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사업장에서 인도적 체류자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짧은 체류 허가 기간으로 고용불안이 크다고 호소했다. 적정 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난민인권센터의 한 변호사는 “불안정한 지위에서는 취업과 처우에서 부당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만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디아코니아의 홍주민 대표는 “난민들은 정부 기관과 시민사회의 배려가 특별히 필요하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난민들이 왔을 때 긴급생활비를 지급하고 한국어 교육 등을 제공해 잘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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