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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억 사기’ 빗썸 실경영주 재판 지연 의혹···보유 자산 행방 묘연

조해람·민서영 기자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16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상통화 거래소 ‘빗썸’의 이정훈 전 의장이 국외 재산 도피 목적으로 자신의 재판 일정을 고의로 지연시키려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서 빗썸 실경영자로 지목한 이 전 의장이 보유한 자산의 행방이 묘연하고 그가 대표적인 조세도피처 사이프러스에 귀화 신청을 한 점 등을 들어 이렇게 의심한다. 이 전 의장 측은 의혹 전반에 대해 소명을 요구하자 “재판 중인 사안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장이 선임한 34명의 변호인단 중 대다수는 지난 9월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을 앞두고 순차적으로 사임했다. 이어 공판준비기일이 임박하자 법원 고위직 출신들을 새로 변호인단에 합류시켰다. 변호인 일부는 기일에 출석해 새로 사건을 맡게 돼 기록을 검토할 시간이 촉박하다며 이 전 의장의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변호인단의 이같은 반응에 재판 지연을 우려했다. 1심 재판부는 “사건은 7월에 기소됐고 충분히 검토할 기회를 주기 위해 기일을 여유롭게 지정했다”며 “불성실하게 재판에 임하면 절대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판부가 입장을 내라고 요구하자 이 전 의장 측은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이라고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장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8일 열리는데, 피해자들은 지난 7월6일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의장이 국외로 재산을 도피시킬 시간을 벌고 있다고 의심한다. 내년 2월 법원과 검찰 인사를 앞두고 재판부와 수사검사 인사 발령을 노리며 재판을 끄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집중심리가 절실히 요구되고 인사이동 이전 판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성형외과 원장 출신 자산가 김모 회장에게 가상화폐거래소 빗썸 공동 경영을 제안하며 약 1600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의장은 김 회장이 빗썸 인수자금 일부인 1억달러(약 1120억원)를 내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BXA코인을 발행해 판매한 돈으로 지급하면 된다며 투자를 제안했다. 이 전 의장은 BXA코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 코인을 빗썸에 상장하겠다고 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이 전 의장은 빗썸 인수를 위한 주식 매매대금 잔금의 담보 명목으로 김 회장으로부터 약 568억원의 채권을 편취한 혐의도 받는다.

김씨 외에도 40여명의 피해자가 코인 매수 등에 쓴 200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의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이들 투자자의 투자금 전액이 빗썸 운영회사 지분 매매대금 일부로 사용됐기에 BXA코인 투자자들을 실질적 피해자로 볼 수 있어 부가적으로 명시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이 집행하려다 실패한 주권 가압류 집행불능조서. 독자 제공.

서울중앙지법이 집행하려다 실패한 주권 가압류 집행불능조서. 독자 제공.

그러나 이 전 의장의 자산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사기 피해를 회복할 방법은 요원하다. 법원은 이 전 의장이 지분을 보유한 빗썸코리아의 지주회사인 빗썸홀딩스와 빗썸홀딩스 지분 30%를 가진 ‘DAA’에 대한 주권 가압류에 실패했다. 주권 가압류 집행불능조서를 보면 법원은 “빗썸홀딩스와 DAA는 법인 주소만 있고 직원 및 소유동산도 없으며 채무자(이 전 의장)도 없다”고 밝혔다.

이 전 의장의 국내 주소지가 불분명하고 해외 귀화 신청을 했다는 점도 의혹을 키운다. 빗썸홀딩스 지분을 보유한 ‘BTHMB홀딩스’의 최대주주이자 이 전 의장이 주요 주주로 있는 싱가포르 법인 ‘SG브레인테크놀로지’의 현지 법인등기부를 보면, 이 전 의장의 국내 주소지는 전북 전주시의 한 주민센터로 등록돼 있다.

빗썸홀딩스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 ‘BTHMB홀딩스’의 최대주주이자 이 전 의장이 주요 주주로 있는 싱가포르 법인 ‘SG브레인테크놀로지’의 현지 법인등기부에 적힌 이정훈 전 의장의 주소(위). 해당 주소를 포털에 검색한 결과(아래). 독자 제공

빗썸홀딩스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 ‘BTHMB홀딩스’의 최대주주이자 이 전 의장이 주요 주주로 있는 싱가포르 법인 ‘SG브레인테크놀로지’의 현지 법인등기부에 적힌 이정훈 전 의장의 주소(위). 해당 주소를 포털에 검색한 결과(아래). 독자 제공

이 전 의장은 최근 사이프러스에 귀화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곳은 국적 취득이 쉽고 법인세가 낮아 해외 거부들의 조세피난처로 활용된다. 김형주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이사장은 “주목받는 거래소 중 하나인 빗썸의 대주주인 홀딩스의 실체가 없다는 점은 문제”라며 “투명경영이나 스스로의 자정능력이 없으면 가상자산산업도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빗썸 측은 “이 전 의장이 현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회사랑 무관하다. 잘 모르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 전 의장 측 변호인들에게 입장을 듣기 위해 수 차례 연락했으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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