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저기에도 ‘신공항’ 탄소 뿜어내는 국토계획

박은하·박미라 기자

해수면이 상승하는 공항의 나라

전북 군산공항을 출발한 제주행 여객기가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인근을 날아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전북 군산공항을 출발한 제주행 여객기가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인근을 날아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항공 분야 탄소, 20년 뒤 3배 급증
국제사회는 비행수요 관리하는데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신공항 정책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해안에는 층층이 쌓인 암벽이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기묘한 모양의 절벽이 있다.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용머리 해안’이라 불린다. 올레10코스와 연결돼 제주의 절경을 뽐내는 명소로 꼽히지만, 용머리 해안 탐방로를 걷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탐방로가 바닷물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용머리 해안 탐방로를 종일 관람할 수 있는 날은 6일로 2016년(63일)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하루 종일 출입이 통제되는 날은 106일에서 204일로 같은 기간 두 배가량 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1991~2020년 국내 전 연안의 해수면은 해마다 평균 3.3㎜씩, 총 9.1㎝ 상승했다. 해수면 상승 속도는 2010년대 들어 가팔라졌다. 해녀 김수선씨(72)는 “예전에는 만조에도 용머리 해안길이 잠기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만조에는 무조건 통제되고, 파도가 조금만 쳐도 위험해서 못 간다”고 말했다. 매표소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도 흔한 풍경이 됐다.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토 공간 전반을 재편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토계획을 짜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핵심적 요소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공항이다. 지역 개발 사업으로 매번 등장하는 새로운 공항 건설이 탄소중립 과제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 해안 탐방로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용머리 해안은 최근 해수면 상승으로 탐방로가 잠겨 출입통제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 해안 탐방로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용머리 해안은 최근 해수면 상승으로 탐방로가 잠겨 출입통제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탄소 뿜어내는 비행기

스웨덴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2019년 유엔 사무총장 초대로 미국 뉴욕서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탄소 배출이 많은 비행기를 거부하고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너 세계인들의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실제 유럽환경청(EEA)의 연구 결과 승객 1인당 1㎞ 이동 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비행기가 285g, 자동차는 158g, 기차는 14g 등으로 나왔다. 비행기가 기차보다 이산화탄소를 20배 이상 발생시키는 것이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자료를 보면 국내 민간항공 분야 탄소배출량은 2010년 113만8090t에서 2019년 164만2410t으로 44.3%나 증가했다. 국내 공항의 여객기 운항 편수가 같은 기간 54만9910편에서 91만8941편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990년(82만3880t)과 비교하면 민간항공 부문 탄소배출량은 30년 동안 두 배가량 증가했다. 그러다 보니 세계화와 지역개발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국제공항이 ‘탄소중립’의 관점에서 보면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재난을 앞당기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그래픽 | 성덕환 기자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지구 전체적으로 항공 분야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현재 전체 배출량의 온실가스의 2~3%에 불과하다. 하지만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따르면 전 세계의 항공수송량은 2008년부터 연평균 5.4%씩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항공 분야 탄소배출량은 지금보다 3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부터 꼭 필요한 비행기만 타도록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합의가 국제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하원이 철도로 2시간30분 이내 거리의 국내 항공여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스웨덴은 국내선 전용인 스톡홀름 브롬마공항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법원은 파리협약의 정신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런던 히스로공항의 활주로 확장 공사에 제동을 걸었다. 활주로 건설은 이후 영국 대법원에 의해 합법 판결을 받았으나 추가 활주로가 기후위기 목표에 충족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됐다.

한국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전기차를 보급하며, 탄소를 흡수하는 갯벌을 복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항정책’만큼은 방향 전환이 없다. 기존의 신공항 건설사업은 그대로 추진한다. 지역 내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주장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올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는 ‘사상 초유의 공항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탄소흡수원 위에 세워지는 새 공항들

지난 6일 오전 10시5분 전북 군산시 옥서면 남수라마을 하늘 위로 보잉747 비행기가 지나갔다. 군산공항에서 출발하는 제주행 비행기다. 민군 겸용 공항인 군산공항에서 민항기는 군산~제주 노선만 하루 4회 운항한다. 전투기는 수시로 뜬다. 전투기가 날 때마다 공기를 찢는 듯한 천둥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마을 주민 김남식씨(65·가명)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도 옛날부터 들어서 뭐…. 그래도 살기는 괜찮은 동네였어.” 어린 시절 마을 앞바다에서 물장구치고 놀 때 돌멩이보다 조개나 농게를 밟는 일이 더 많았다. 물이 빠지면 조개를 캐 리어카에 한가득 싣고 왔다.

새만금 간척사업 이후 그가 놀던 바다는 갈대, 해홍나물, 칠면초가 무성한 벌판이 됐다. 하얀 조개 껍데기 파편으로 뒤덮인 땅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깊이 1㎝가량 발자국이 날 정도로 폭신했다. 방조제로 물을 막아 만들어 낸 육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에 살아남은 뜻밖의 갯벌이다. 전북도의 계획대로라면 2028년 이 갯벌 일대에 새만금국제공항이 들어선다. 전북도는 공항을 지렛대로 세계적 기업들을 유치해 새만금을 동북아 물류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공항 건설에 대한 김씨의 생각을 물었다. “관심 없어…. 그저 땅을 헛되이 쓰는 게 마음 아파.”

지난 6일 전북 군산시 옥서면 남수라마을 앞 ‘수라갯벌’과 이어지는 갈대밭을 구중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과 기자가 함께 걷고 있다. 수라갯벌은 2005년 새만금방조제 완공 이후 새만금에서 유일하게 남은 갯벌로, 전라북도가 2028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하는 국제공항 예정 부지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 6일 전북 군산시 옥서면 남수라마을 앞 ‘수라갯벌’과 이어지는 갈대밭을 구중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과 기자가 함께 걷고 있다. 수라갯벌은 2005년 새만금방조제 완공 이후 새만금에서 유일하게 남은 갯벌로, 전라북도가 2028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하는 국제공항 예정 부지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국내에 공항은 총 15개가 있다. 글로벌 항공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천국제공항과 중부(김포)·강원(양양)·충청(청주)·호남(무안)·대구경북(대구)·동남(김해)·제주(제주)에 권역별로 하나씩 총 8개의 국제공항과 주로 군 비행장을 겸하는 7개의 일반 공항이 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는 부산 가덕도, 새만금, 울릉도, 흑산도, 제주 성산읍(제주 제2공항), 경북 군위·청송(대구경북통합신공항)에 공항을 새로 짓기로 했다. 신공항이 완성되면 기존 공항 3곳(군산, 광주, 대구)을 인접 공항에 통합·이전해 공항의 총 수를 15개에서 18개로 늘린다는 것이 지난해 9월 내놓은 제6차 공항종합계획의 내용이다.

새로 짓는 공항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자극받은 충남도가 서산국제공항을, 흑산·울릉공항에 자극받은 인천시가 백령공항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수원지역 국회의원들은 공군비행장을 화성으로 옮겨 경기남부통합공항을 짓자고 제안하고 있다. ‘경기남부공항’ 아이디어에 포천시의회 집행부가 나서 포천 군비행장을 ‘경기북부공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공항은 대부분 탄소흡수원 역할을 하던 곳 위에 만들어진다. 가덕도신공항, 울릉공항, 새만금공항은 바다와 습지를 매립한 땅에 지어지며, 흑산공항은 산을 깎아서 짓는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과 제주 제2공항 부지는 농경지다. 안재홍 제주녹색당 정책위원장은 “공항을 지으려면 갯벌이나 농경지를 아스팔트로 덮어야 한다. 비행기가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 외에도 흡수원을 파괴해 생겨나는 문제점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마다 탄소중립을 외치면서도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공항을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과거 정부의 수송 부문 온실가스 감축 전략은 도로와 항공에서 친환경적 교통수단인 철도나 자전거로 수요를 옮겨오는(모달 시프트) 계획을 배제한 채 수립돼 실패가 예견됐다”며 “2050탄소중립 전략에서도 역시 도로와 항공 부문의 수요관리 전략은 부재하고, 철도와 항공, 해운의 ‘선진화’로만 제시돼 있다”고 말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기후위기충남행동,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등 신공항반대단체들은 “항공산업과 공항이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지목되면서 국제사회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배치되는 정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 성덕환·박은하 기자

그래픽 | 성덕환·박은하 기자

공항, ‘미래’가 아니다

용머리 해안이 있는 제주 안덕면에서 동쪽으로 80㎞가량 떨어진 성산읍이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다. 이 지역 5개 마을이 포함된 부지 545만6000㎡를 수용해 연간 1992만명이 이용할 수 있는 신공항 건설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환경부가 국토부의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를 반려하면서 사업의 향방은 알 수 없게 됐다.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항공운송 의존도가 높고,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항공 교통 인프라를 갖추고자 하는 바람이 컸다. 2012년 ‘탄소배출 없는 섬(CFI)’을 선언했으면서도 제2공항 건설이 추진된 이유이다. 그러나 관광객 증가와 개발에 따른 피로감이 확산되고, 환경 훼손 논란이 이는 데다 공항 문제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분열을 겪으면서 여론이 변해 갔다.

2015년 11월 도민의 70% 이상이 제2공항 건설을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지난해 2월 제주 9개 언론사 조사에서는 반대 여론이 더 높게 나왔다. 여전히 포화상태인 제주공항의 안전 문제 등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지만 이제는 제주에서도 ‘새로운 공항으로 인해 도민의 삶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인 성산읍 일대 전경. /강윤중 기자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인 성산읍 일대 전경. /강윤중 기자

육지에서는 새 공항의 필요성이 더욱 떨어진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기존 공항 15곳 가운데 10곳은 적자였다. 무엇보다 정부와 지자체마다 기후위기를 대비해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신공항을 이용하는 정치권의 낡은 전략은 반복되고 있다.

충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서산국제공항 건설은 김영삼 대통령의 ‘서산공항 개발’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산 해미공군비행장 소음 등에 대한 보상책으로 민간항공도 유치하겠다는 취지였다. “정치인들은 그 이후 20년 넘게 선거 때마다 충남에만 공항이 없다면서 신공항 공약을 들고 나왔지만 지역민들은 ‘선거라 또 그러나 보다’ 하고 무덤덤하게 반응했어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당진·홍성은 1시간대에 서울 진입이 가능하고 군산공항과도 가까워요. 천안은 청주공항과도 가깝고요. 충남 기업들의 주력 수출품은 철강인데 보통 항만을 이용하고, 반도체 공장들은 청주와 가까이 있어요. 공항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거죠.” 조순형 기후위기충남행동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조 위원장은 “지난해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통과되자 서산시장이 ‘가덕도는 해주는데 서산공항은 왜 약속을 안 지키냐’고 치고 나가며 신공항에 다시 불을 지폈다”고 덧붙였다.

신공항 건설은 이처럼 선거 때마다 대통령 공약, 지자체장 공약으로 시작된다. 김지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은 “공항이 필요하다는 이유인 ‘균형발전’ ‘동북아 물류허브’ ‘숙원사업’ 등은 어느 지역에서나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한 듯 똑같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항공수요 관리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공항들은 훗날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김현우 연구위원은 “30년 후의 여행·이동패턴은 지금과 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는 기후와 지속 가능성을 우선 원칙으로 둬야 한다”며 “항공산업의 미래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 본 미래④]여기에도 저기에도 ‘신공항’ 탄소 뿜어내는 국토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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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강연주 강윤중 권도현 김한솔 박미라 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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