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제 5단체가 지난달 27일 청와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도 건의 대열에 끼었다. 어느 경제지는 지난달 아예 여론조사까지 했다. 응답률 9.6%인 1008명 중 찬성 69.4%였다고 한다. 여기에 유교와 불교 등 종교계가 가세했다. 사면론의 요지는 ‘반도체 위기’다. 일부 언론의 태도는 점점 강해진다.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라던 어느 칼럼의 주장은 사설로 이어지더니 마지막으로 어떤 칼럼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바라며 “부디 진영을 넘어 나라를 구하시기 바란다”라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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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법률은 자주 바뀌어서 법률가도 아차하면 실수하지만, 유독 사면법은 1948년에 제정된 후 무려 60년이 지난 2008년에야 개정되었다. 그 후 세 번의 개정이 있었으나 내용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별사면의 법률적 요건은 무엇인가? 어떤 사유가 있어야 사면할 수 있는지를 정한 조항 같은 것은 사면법에 없다. 다만 사면을 상신하는 검사나 교도소장이 신청서에 판결서의 등본 또는 초본, 형기 계산서 외에 범죄의 정상, 수형 태도, 장래의 생계, 그 밖에 참고가 될 사항에 관한 조사서류를 첨부하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이 부회장의 경우에는 크게 참고될 만한 사항 같지가 않다.

경제계·지자체에서 꺼낸 사면론
책임은 단 한 사람, 대통령의 몫
빚은 지더라도 꿈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빚 없는 강자가 될 것인가
해법은 이 부회장에 있을지도…

사면에 대해서는 이것이 비민주적인 제도이고 사면권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으로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주장이 있다. 수긍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제도가 왜 헌법에 정해져 있겠는가.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운영이다. 근대적 의미의 사면은 본래 중세 국왕의 특권에서 생겨난 제도다. 잘못된 재판의 시정책으로 쓰이기도 했고, 가혹한 법 집행을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법조계는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재벌 총수 사면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고, 경실련은 “되풀이된 사면에도 불구하고 기업인의 범죄는 근절되지 않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들의 사법 불신만 심화했다”고 반발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의 경우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 판결이 확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재판에 무슨 특별한 결함이 있다고 볼 근거도 없다. 사면이라는 제도의 긍정적 역할을 내세울 명분이 약한 것이다. 과거 정권 아래에서 기업인들이 사면을 받아 형벌권 행사가 흔들렸던 사정도 부정적 이미지를 줄 것이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무슨 이유에서든 수사와 처벌을 받아온 역사가 되풀이되어도 경영에서 크게 변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면의 효과를 의심하게 할 만한 점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현재 다른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이미 네 차례의 특별사면을 했다. 그중에는 ‘민생 사면’이 있는데, 이 용어는 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붙인 것이다. 사면은 대통령의 정치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에 관한 견해이기는 하나, 문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사면에 ‘국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이번의 여론조사 결과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 점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정봉주 전 의원, 이광재 전 지사, 곽노현 전 교육감을 사면한 바 있다. 법 앞의 평등과 형평을 따지자면 기업 총수라고 꼭 사면에서 제외해야 할 것도 아니다. 사면의 논란에선 아무도 상대방을 설복시킬 수 없고, 아무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은 단 한 사람,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사면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그의 정치학으로 내리는 고독한 결단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사면을 하려 하고 대신들은 이에 반대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때마다 사면의 폐해를 지적하며 나오는 말은 ‘사면은 소인에게는 다행이나 군자에게는 불행이다(赦者 君子之不幸 小人之幸也)’라는 것이다. 본래 당 태종이 한 말이라는데, 사면이 잦아지면 악한 짓을 하는 자의 마음이 고쳐지거나 악행의 풍습이 사라지지는 않으면서 죄 없는 양민들만 해친다는 경고다. 자의적이지만 이걸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 ‘사면은 소인이나 바라는 바고, 군자는 사면받기를 외려 불행으로 안다’라고. 수형생활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은사(恩赦)는 망상이 아니라 수형자의 꿈이다. 꿈을 탓할 순 없다. 그러나 은혜는 갚아야 할 빚이다. 빚을 지더라도 꿈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빚 없는 강자가 될 것인가. 문제의 해법은 이 부회장 본인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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