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제1호 사건’을 보는 답답함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헌법재판소가 1988년 출범했을 때, 그 전신인 헌법위원회의 유명무실함을 보아온 법조계 일각에서는 저 기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보았다. 그러나 그해 헌재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6조 제1항 단서의 위헌 여부가 문제가 된 사건에서 공개변론을 열고 창설 이래 제1호의 위헌 결정을 내렸다. 누가 봐도 위헌이라고 할 만한 법률조항이 문제가 된 사건을 골랐고, 그 심리과정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변론에 부쳤다. 민사소송에서 당사자인 국가와 국민을 동등하게 대하라는 선언은, 군사독재에 지쳐 국가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시작되던 시대적 상황에서 타이밍도 절묘했다. 헌재의 초대 소장과 재판관들의 혜안과 감각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이로써 헌재는 일반의 의구심을 불식했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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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교사 특혜채용 의혹을 제1호 사건으로 입건하고 수사하고 있다.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은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1000건에 가깝고 그중 절반 이상에서 판사와 검사가 대상자다. 공수처는 권력기관의 횡포와 비리를 실효적으로 제어하고 단죄하려고 설치된 것이다. 이런 공수처가 하고 많은 대상자와 사건 중 하필 교육감의 교육행정 직무수행과 관련된 사건을 제1호 사건으로 삼은 것은, 감각은 그만두고라도 권한 행사에 적정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혹시라도 공수처가 정치적 부담이 작은 사건을 고른 것이라면 그 전략적 판단은 수가 얕다.

우선 조 교육감의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는지부터 의문이다. 공수처가 검토한다는 직권남용죄의 성부를 보자. 특별채용이 직권의 ‘남용’에 해당하는가? 서울시교육청의 교원 특별채용 절차에는 부교육감, 교육정책국장, 중등교육과장, 장학관 등이 담당 결재라인에 있다고 한다. 이들을 그 직무에서 배제하고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실무를 맡게 하여 해직교사 5명을 채용하게 했다는 것이 혐의 사실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교육감은 스스로 결재를 회피했고, 교육정책국장 등은 결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 여하는 수사 결과를 보아야 하겠지만, 대법원은 2017년 교사의 특별채용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교육기관의 인력 수요는 복잡 다양하므로 그 보완책으로 경쟁이 제한되는 별도의 선발 방법을 인정하는 것이 특별채용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교사 선발에서의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한 바 있다. 교사 임용의 최종 권한을 가진 교육감이 교육행정상 목적 달성을 위한 행정행위로 임용 결정을 내린 이상, 결재 과정에서 담당자들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는 사정만으로 담당자들로 하여금 직권남용죄의 요건인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조 교육감의 지시로 비서실장이 관련 실무 일부에 관여했다고 하는데, 비서실장의 임무가 교육감 업무를 보좌하는 것이라면 그 관여행위가 ‘의무 없는 일을 한’ 행위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임용 강행이 행정적 관점에서 적절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이를 범죄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권력형 중대범죄 다루고자 출범
첫 입건 사건에 서울교육감 ‘의아’
죄 구성 의문…하수의 방책일 뿐
헌법서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
잘못 있으면 유권자 심판 받아야

죄가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가벌성은 크지 않다. 직권남용죄 자체가 공직사회에선 이미 ‘고무줄 범죄’ 같은 괴물이 되어 버린 세상에, 조 교육감에 대한 직권남용죄 적용은 직권남용죄의 남용 같아 보인다. 더욱이 이 사건에서는 공수처에 수사권만 있을 뿐 기소권이 없다. 검찰이 기소한다고 하더라도,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제한적으로 해석해 온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보면 유죄 판결이 나올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이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자주성이나 전문성을 보장한다고 한 경우는 교육 분야 외에 없다. 한편으로는 교육감을 선거로 선출하는 의미도 새겨 보아야 한다. 교육행정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최대한 존중해 정책상 당부에 관한 판단은 교육계 자체에 맡기는 것이 옳고, 혹시 잘못된 일이 있으면 후일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민주정에서의 적정한 책임 추궁 방식일 것이다. 이것을 굳이 형사범으로 다루려는 방책은 하수다. 형사책임의 존재부터 의심스러울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공수처가 아니면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권력기관이 저지른, 누구도 범죄성을 의심할 수 없고 또 중대한 권력형 비리를 제1호 사건으로 입건할 수는 없었을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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