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엘라를 아시나요?

영화 <크루엘라>의 한 장면.

영화 <크루엘라>의 한 장면.

크루엘라를 아시나요? 고백하자면 영화 <크루엘라>의 예고편을 보기 전까지 그녀의 이름이 크루엘라인지 몰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악녀, <101마리의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마녀 같은 여자의 이름이 크루엘라인지 몰랐던 것이다. 하긴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의 가죽을 탐내는 악녀일 뿐 고향도, 나이도, 이름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능적 배역,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해 필요한 악, 그녀는 그저 그런 존재였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디즈니 실사화 작업 중 하나인 <크루엘라>는 그런 점에서 기능적 악당을 이름으로 제대로 각인시켜주는 작품이다. 이름이 기억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어서 기억되는 게 아니라 기억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악당 다시보기가 처음은 아니다. 같은 디즈니 원작 <말레피센트>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잠재우는 마녀를 입체적 캐릭터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문제는 배역보다 배우 앤젤리나 졸리의 존재감이 더 컸다는 사실이다.

2021년 영화 <크루엘라>는 문화적으로 풍성했던 1970년대 영국을 선사한다. 그 풍요로움은 펑크록으로 압축된다. 불타는 런던(London’s Burning)을 부르짖으며 케케묵은 권위에 도전했던 반항아들. 온갖 금지된 것들을 무대에 올려 굳어버린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모욕감을 끼얹던 젊은이들, 그 들끓던 전복의 시대를 영화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전위적 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와 섹스 피스톨스가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듯이 신예 디자이너 크루엘라는 단숨에 영국의 엘리트 패션계를 흔든다. 전복과 반항으로 표현되는 변혁적 젊음의 에너지가 크루엘라를 이끄는 것이다. 겉치레만 펑크록의 파괴력을 차용한 게 아니다. 공교롭게도 <크루엘라>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젊은 세대의 문제, 가진 것은 없으나 변화를 절실히 요구하는 신예의 저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괴짜 소녀 에스텔라 크루엘라는 어린 시절부터 패션디자이너가 되길 꿈꾼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그만 고아가 되고 만다. 낯선 런던에 홀로 남겨진 에스텔라는 1970년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부랑아 소년들과 함께 성장한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당대 최고 권위, 권력, 인기를 누리는 디자이너 ‘남작부인’의 눈에 띄어 그녀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드디어 그녀의 꿈을 실현시켜줄 힘 있는 멘토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멘토는 멘티의 청춘, 에너지, 아이디어를 아무렇지 않게 뺏는다. 갑질도 서슴지 않는다. 칭찬과 격려로 적당히 키워는 주는 척하지만 일취월장의 순간 싹을 잘라버린다. 크루엘라가 악당인 줄 알았는데 진짜 악당은 바로 남작부인. 기득권 유명인사가 훨씬 더 악독하게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남작부인’의 이름이 그저 남작부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최고 권위와 권력을 누리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정작 고유명사로서의 자기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바로니스(Baroness)는 그녀의 작위이자, 이름이며, 브랜드명이고 곧 자기 자신이다. 남작과의 결혼으로 얻은 ‘남작부인’이라는 정체성 외에 자기를 규명할 것이라곤 사회적 지위로 감춘 악행들밖에 없는 것이다.

<크루엘라>는 고아 에스텔라가 가족을 가진 크루엘라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이다. 스스로 이름을 만들어 자기 정체성을 만들고, 낳거나 키워준 엄마가 아닌 함께 성장한 친구들을 가족으로 고쳐 부른다. 크루엘라의 파괴적 혁명성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이유이다. 디즈니 동화의 아주 오래된 비밀과 관습도 뒤집는다. 니나 시몬, 더 도어스, 롤링 스톤스의 음악과 함께 반란은 유쾌한 리듬이 된다.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세상과 스스로 결별한 문제적 디자이너 매퀸의 의상과 생애를 참고했다고 한다. 택시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유례없던 전위성으로 패션 기득권을 흔들었던 악동 매퀸. 결국 판은 흔드는 사람에 의해 뒤집힌다. 변화는 느닷없고, 버릇없고, 예외적이다. 새로운 것의 출현은 불안하고 불온하지만 그래도 뜨겁고 흥분된다. 그런 뜨거운 흥분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열기, 그 열기가 단지 50년 전 과거 1970년대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불어왔으면 싶다. 기성세대의 눈치만 보고 거기에 맞추는 게 아니라 좀 멋대로 살고, 저항하는 젊음, 2021년의 크루엘라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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