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머리 묻어주기

부희령 작가

한밤중에 온 동네 개들이 짖고 고양이들이 날카롭게 울어댔다. 이따금 족제비가 출현하던 산비탈 동네에 살 때의 일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거무스름한 물체가 길에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피가 엉겨 붙은 고양이의 발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다. 어린 시절 동물원 우리에 갇힌 호랑이의 눈을 처음으로 마주 보았을 때 그랬던가. 자연에 대해 품고 있던 평화롭고 자유로운 곳이라는 막연한 관념이 깨지고 뭔가 섬찟한 민낯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부희령 작가

부희령 작가

정체불명의 물체를 유심히 들여다본 것을 후회하며 그 자리를 떠나려는데, 얼마 전까지 살아 있는 몸의 일부이던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생명을 존중하여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를 특별히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피가 흐르는 발을 시멘트 도로 위에 그냥 두고 가기는 힘들었다.

애나 번스의 소설 <밀크맨>에서 걸어 다니며 책을 읽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폭탄이 터진 자리에서 고양이의 잘린 머리를 발견하고 복잡한 심사에 빠져든다. 애써 눈을 돌리고 가던 길을 가다가, “딱 한 가지가 바뀌면 다른 것도 모두 바뀔 거라고 장담해요”라는 프랑스어 선생의 말을 떠올리며 그 자리로 돌아간다. “어쩌려고?” 그녀는 혼잣말로 묻고 대답한다. “어딘가 푸른 곳으로 가져갈 거야.” 산울타리, 수풀, 나무뿌리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녀는 두 장의 손수건으로 고양이 머리를 잘 감싼다.

오랜 갈등과 반목 속에서 폭력과 감시, 죽음과 슬픔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이 있다. 누가 설치했는지 알 수 없는 폭탄이 불시에 교회나 자동차에서 터지고 구타, 낙인찍기, 실종이라는 처벌이 횡행하는 곳이다. 사람들의 소통 방식은 암시와 협박, 무성한 뒷소문이다.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구별이 그다지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공격하는 자와 공격당하는 자, 즉 머리 위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자와 땅에서 고스란히 그것을 받아야 하는 동물, 여성, 노약자라는 구별이 더 현실적이다.

세상을 외면하고자 거리를 걸을 때 ‘아이반호’ 같은 책을 읽는 그녀가 으깨진 고양이 머리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봐야 달라지는 게 있나?’라고 의심한다. 우유 트럭을 몰고 다니는 진짜 밀크맨이 나타나 질문을 퍼붓거나 왜곡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 전까지는. 그래서 고양이 머리를 잘 묻어주겠다고 약속하기 전까지는.

<밀크맨>은 1970년대의 북아일랜드라는 배경에서 쉽게 기대할 수 있는 정치적 서사를 훌쩍 뛰어넘는 소설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전쟁은 동물이나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짜와 진짜에 대해 말하고 있거나 비정상과 정상을 가르는 사회적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죽어간 고양이의 피 흘리는 머리가 묻힐 ‘푸른 곳’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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