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노에서 향노로

고영직 문학평론가

20대 시절을 소환하는 놀이가 페이스북에서 대유행하고 있다. 40대 이상 중년 이용자들이 옛 시절을 추억하며 한때 자신에게도 리즈 시절이 있었다는 걸 대놓고 자랑질한다. 언제부터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 밈 문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 시작된 릴레이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며 여름 내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었다. 나 또한 20대를 회상하는 사진을 ‘투척’할까 하는 노출의 유혹을 가까스로 참으며 누구에게나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의 한 순간이었을 20대 시절을 회상하는 페친들의 옛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중년들의 20대 추억 소환 놀이를 ‘추억팔이’라고 치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 작가가 “삶은 나날들이 아니다. 삶은 밀도다”(조에 부스케)라고 한 말은 최근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참조점을 제공한다. 누구에게나 20대 시절은 인생의 ‘절정’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그 시절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했던 시간조차도 젊음의 특권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 여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우리는, 과연 밀도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 셈이다.

중년 이후 삶에서 무엇이 밀도 있는 삶을 이루는가. 나이듦에 저항하려는 항노(抗老) 혹은 안티에이징(anti-aging)의 문화 대신에, 노화를 긍정하고 나이듦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향노(向老)’의 태도를 수용하려는 문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얼굴에 발라야 시간의 주름을 펴며 젊어 보이는지 고민하는 항노의 웰니스 문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긍정하려는 성숙한 향노의 문화가 필요하다. 일본 향노학학회는 좋은 롤모델이 된다. 일본의 저명한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 또한 이 학회에서 활동하며 향노에 관한 글을 집필하면서 담론화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

어떻게 ‘항노’에서 ‘향노’로 전환할 수 있을까. 시간의 주름 따위는 보톡스 주사로 지우며 오로지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나이듦의 문화를 조금씩 바꾸려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느 시인이 “많은 것을 잃고도 몸무게는 늘었다”(천양희)라고 한 표현은 나이듦에 관해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시의 표현처럼 나와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것을 잃게 되지만, 몸무게는 오히려 더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와 당신이 자기 앞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잃은 것들의 목록은 어떤 것들인가. 어쩌면 꿈, 희망, 용기처럼 미래를 기약하는 기대와 약속의 말들이었을 것이다. SNS에 부는 20대 추억 소환 놀이는 ‘아 옛날이여’를 회상하며 더 좋은 삶을 욕망하려는 문화적 징후일 것이다.

인생의 절정 이후에는 추락이 점점 시작된다. 지나간 과거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나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누구와 만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자기 에너지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하여’ 살려는 삶의 태도가 더 요청된다. 하와이 노인들은 지나간 일 대신에, 내일 해야 하는 서핑 같은 ‘할 일’에 대해 말하기를 더 즐겨 한다고 한다. 어쩌면 밀도 있는 삶은 그런 나이듦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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