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공장 된 마을의 분노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오토바이 세워두면 발로 차버릴 거야!” 주택가 2층 창문 너머로 한 시민이 고함쳤다. 배민 B마트 앞에 살던 시민이었다. 배민이 생필품 주문을 받아서 오토바이로 손님에게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B마트다. 배민은 오토바이라이더들이 빠르게 픽업해서 배송할 수 있으면서도 비교적 임대료가 싼 주택가 골목에 물품창고를 만들어놓았다. 이 때문에 오토바이 주차와 소음으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배민한테 이야기 하세요”라고 해봤자 소용없다. 주택가뿐만이 아니다. 택배차, 오토바이, 전동킥보드, 자전거로 도시 전체가 혼잡하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마을 위에 배달플랫폼이 거대한 공장을 지어버렸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자동차가 오고가는 도로는 배달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생산 활동을 하는 일터다. 오토바이와 택배차가 달리는 동선을 이어보면, 도시 전체를 돌리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드러난다. 배달노동자들은 이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거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다. 공장 안에서 벌어졌다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산업재해다. 하루 6명이 일을 하다 사망해도 변화가 없는 나라다. 이 사망사고는 시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굳게 닫힌 공장 파쇄기에서, 시골의 비닐하우스에서, 펜스가 쳐진 공사현장에서, 알 수 없는 화학물질 속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그러나 플랫폼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기계는 차량 운전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모, 꿀잠을 자고 싶은 주민 옆에서 돌아간다. 김용균이 죽은 석탄발전소가, 삼성 노동자가 죽은 반도체 공장이 내 집 앞 길거리에서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다만, 시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배달플랫폼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라이더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 도시가 일터인 라이더와 도시가 생활공간인 시민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이 벌어지는 이유다. 빠르고 신속하게 일할수록 플랫폼사와 점주, 소비자에게 칭찬받지만 시민들에게 욕먹는다. 그래서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겐 산재고, 누군가에겐 교통사고다. 배달플랫폼은 산재를 무수히 유발하면서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법적 도덕적 책임에서 도망칠 수 있다. 게다가 도시가 공장이니 시민들을 로그인만 시킬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을 시킬 수 있다. 누가 얼마나 죽든 대체인력을 구할 수 있다.

플랫폼회사는 이 최고의 공장을 짓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도로를 깔고 정비하는 것은 국가가, 사고예방을 위한 단속은 경찰이, 배달쓰레기는 공공의 세금과 시민들이 감당하고 교통사고 처리는 배달노동자 스스로 해결한다. 배달업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비용을 시민과 노동자가 지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최근 합병과 상장에 성공한 배민과 쿠팡은 서울을 투자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화면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배달기업은 얼마나 신속하게 배달할 수 있는지를 국제적 투자자에게 시연했고 투자자들은 도시와 시민을 사유화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플랫폼에 열광했다.

배달 라이더를 욕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오토바이 단속 강화도 찬성한다. 그런데 악플만으로 배달플랫폼의 공장이 되어버린 우리 마을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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