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교과서’에 이의 있습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체육교과서’에 이의 있습니다

중·고교 ‘체육’ 교과서들을 살펴볼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교과서를 ‘숙독’하면서, 그 옛날에 그랬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하는 소회마저 없지 않았는데, 우선 일감으로 떠오른 것은, 그 만듦새가 가히 상전벽해라는 점이다. 교과서가 재미있기는 어렵지만 세련된 편집, 친절한 문장, 다양한 사례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과 교사의 ‘교학상장’이 가능한 섬세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그럼에도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2021년 현재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총괄적으로 마무리되고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지난 4월, 교육부는 ‘미래사회의 기본 역량과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야 한다’는 기조 아래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가까운 시일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고교학점제가 실행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는 이 시점에 ‘교과목 구조 개편’ 및 그에 따른 기존 교과서의 검토는 꼭 필요하다. 예컨대 교육부가 발표한 ‘안전한 삶과 생활’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의 개정 방향은 ‘체육’ 교과목과 직접 연관되는 중요한 항목이다.

그런 점에서 ‘건강’ ‘도전’ ‘경쟁’ ‘표현’ ‘안전’ 등 다섯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편제된 ‘2015 체육 교과서’는 급변하는 사회상황을 느리지만 꾸준히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교과서의 특성상 그 골자는 유지하더라도 해당 개념과 실제 내용의 변화는 도모해야 한다. 예컨대 ‘건강’의 경우 기존 교과서의 대부분이 신체 중심의 건강과 여가선용 차원의 개인 관리에 집중되어 있다. 건강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신체 상태나 활력에 우선 주목해야 하지만 실은 사회적인 관계와 긴장 또는 협력의 연대 속에서 ‘건강한 삶’이 도모된다. 다른 사람과의 실질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체육 교과서라면, 개인의 신체 건강에 더하여 스포츠를 통한 사회적 관계 맺기와 그로 인한 육체적 활력 및 정서적 유대의 측면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여가선용’ 역시 사회적 필수 활동을 하고 난 다음의 여분의 시간에 하는 활동으로 축소 서술된 경우가 많다. 그 ‘선용’ 또한 대체로 ‘재충전’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신체 활동을 기본으로 하는 다양한 여가 활동은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어떤 보조적 수단을 넘어서고 있다. 여가 활동 그 자체에 내재된 가치가 있고 그것에 참여하거나 그것이 확장할 경우 관련된 산업의 확산은 물론이고 앞서 교육부가 밝힌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의 미래지향적 교육 가치가 실현 또는 체험될 수 있다.

이럴 때 체육 교과서의 핵심이 되는 ‘도전’ ‘경쟁’ ‘표현’ 등의 서술도 변화가 가능하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스포츠를 누리고 즐기며 미래를 상상하는 것에 비하여 실제 교과서는 기능주의 서술로 제약되어 있다. 개별 종목의 유래, 규칙, 효과 등에 더하여 그 종목의 내재적 가치와 확산된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가까운 미래사회의 변화 양상의 서술이 필요하다.

‘안전’ 역시 마찬가지다. 대다수 교과서는 ‘안전’을 개인적 차원의 대처 방식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마땅히 필요한 내용들이고 무엇보다 긴급한 상황에서 필요한 대응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차원의 ‘안전’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장차 법관이나 정치인이 되라고 사회 교과서에 삼권분립을 서술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학생들이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계의 ‘안전’에 대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는 교육부가 밝힌 ‘안전한 삶과 생활’과도 부합한다.

극히 일부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폭력이나 성폭력에 대한 서술을 찾아보기 어렵고 개별 종목의 부가 설명이 오히려 해당 종목의 가치를 희화화한다는 점, 예컨대 우사인 볼트가 동물들과 달리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예화가 반드시 필요한지, 볼트나 손흥민 같은 스포츠 스타가 여러 교과서에 등장하는데 그들을 신체적으로 월등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만 서술한 게 아닌지 등의 아쉬움 또한 있다. 이미 올림픽 종목이 된 경기를 ‘이색 스포츠’로 구분하는 것도 재검이 필요하다.

물론 교과서 하나로 중·고교 학생들의 신체적 활력과 사회적 관계 형성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체육 수업의 운영, 타 교과와의 불평등 관계, 스포츠클럽과 신체 활동, 학점이수제 실시로 인한 기피 우려 등이 총괄적으로 검토되어야 하겠으나, 우선 교과서를 일별해 보았다. 어찌되었든, 학생들이 교과서는 수령할 것이고 받자마자 펼쳐보기는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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