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in 추석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2019년은 내가 글을 쓰는 삶을 시작한 지 4년차가 되던 해였다. 아니, 글을 쓰는 삶이라고만 하면 안 되겠다.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의 책을 읽고 나를 작가로서 초청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주로 독서모임, 학교, 도서관, 기관 등이었고, 나는 그것이 고마워서 대개 거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었다. 그해에 내가 독자들에게 받은 초청은 230건 정도였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만큼 돈을 벌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그러면서 나는 제대로 집에서 자 본 일이 별로 없을 만큼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녔다. 몇 년 전만 해도 집과 대학의 연구실을 오가는 게 전부였고 대학교 MT가 아니면 1박 이상의 여행을 가 본 일도 없었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법이다. 서른일곱 살, 선배들이 왜 KTX만 타고 특실을 고집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몸이 힘든 데 더해 기차에서도 일을 해야 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를 직접 운전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새벽 5시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오전 10시에 부산의 연수원에서 강연을 하고, 오후 1시에는 경남 김해의 도서관에서 강연하고, 오후 7시에는 전남 순천의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한다. 그러고 나면 축 늘어져서 숙박앱으로 근처의 숙소를 찾아 들어가서는 배달음식을 먹고 글을 쓰다가 잠드는, 그런 나날들을 지속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먹고사는 것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즐거웠다.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일, 내 책을 읽지 않은 누군가가 나의 책을 꼭 읽어보겠다는 하는 일, 모두가 실로 즐거운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먼 지역일수록, 그리고 KTX 노선이 놓이지 않은 지역일수록, 초청하는 사람에게서는 “미안합니다” 하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러니까 너무 먼 데서 연락드려 죄송하다는, 기차역이 없는 데서 연락드려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지방의 중소도시에 산다는 이유로 담당자는 우선 죄인이 된다. 강연을 하러 간 당일에도 나를 소개하기를 “서울에서 오신 유명한 작가님입니다”라고 하는 일도 많았다. 서울에서 온 건 맞고 유명하다는 말은 틀렸다. 다만 그 소개를 들으면서 오히려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용어가 유행 중이다. 작가도 독자도 자신의 자리에서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용해 간편히 가상공간에 접속한다. 시 낭독회를 하는 시인도, 신간 발표회를 하는 소설가도, 심야 괴담회를 여는 스릴러물 작가도 있다. 나도 얼마 전부터 일요일 아침 7시마다 나의 가상공간 서재에서 독자들과 만난다.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 누군가들이 나타나고 방의 작은 벽난로 근처에 모여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헤어진다.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말하기도 하고 좋은 구절을 메모해 두기도 한다. 나는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잘 모른다. 나는 주말이면 강릉에 있다. 그들과 도저히 이 시간에 만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서로 잘 안다. 그러나 경포호를 한 바퀴 뛰고 온 나는 자고 있는 아이들을 살피고는 가상공간 서재에서 매주 그들과 만난다.

여기에서는 지방으로 내려간다, 서울로 올라간다, 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다. 서울에서 멀어서 미안할 일도 KTX 노선이 없어서 미안할 일도 없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메타버스의 세계는 그런 수직 위계의 지형도를 조금씩 허물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추석은 거리 두기로 인해 모두가 강제로 메타버스행이다. 오프라인에서 하는 강연은 거의 없다시피 줄었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있다. 메타버스의 세계가 그간 죄인이 되었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구원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 코로나19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없게 되어 아쉬워요’라는 말을 줄여가고 있다. 우리는 세계를 보는 지평을 조금 더 넓힐 기회를 얻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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