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영화 <보이스>의 한 장면.

영화 <보이스>의 한 장면.

연휴의 기대작이라면 영화 <보이스>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었을 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일확천금을 소재로 삼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확천금을 얻는 쪽에 대한 이미지다. <보이스>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쪽을 범죄자로 보고 있다면 <오징어 게임>에서 그것은 기회이다. 만약 한국형 서사와 소위 미국형 서사가 구별된다면 바로 이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영화 <보이스>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영화이다. 선량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시민이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가진 돈을 모두 잃는다. 그런데 잃는 게 돈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잃고, 계획도 잃고 더불어 미래도 잃게 된다.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취준생에게 걸려온 합격 전화, 청약 당첨을 기다리는 신혼부부에게 걸려온 당첨 전화, 유학생을 둔 부모에게 걸려온 위급한 전화, 소수에게만 제공된다는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 기회 등. 이런 전화는 영화 속 대사처럼 전화를 받은 사람의 두려움과 희망을 파고든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판단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테다.

반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위험한 게임에 발을 디딘다. 강제로 붙잡혀 오거나 납치된 게 아니라 아주 낮은 확률의 위험한 게임이지만 자신이 최종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욕망에 선뜻 게임에 참여한 셈이다. <오징어 게임>의 경쟁 논리는 우리가 흔히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풍경으로 익숙하게 봐왔던 것들이다. 2011년 월스트리트 시위 때 1%의 주식 부자들이 와인잔을 손에 든 채 시위대를 마치 놀이공원 퍼레이드대처럼 내려다보던 장면의 상징성처럼 말이다.

현존 범죄를 다루는 만큼 <보이스>는 철저한 고증에 집중한다. 어떻게 범죄가 기획되고, 설계되고, 실행되는지 되도록 해부학적으로 드러내 그 과정 자체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 속 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경고하고 훈계하는 다소 촌스러운 말 걸기가 이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니, 영화로만 즐기지 말고 대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배우 김무열이 <보이스>를 두고 ‘보이스피싱 백신’이라고 홍보하는 맥락도 이 계몽성과 닿아 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출연자들의 의상, 세트, 조명, 서사를 비롯해 모든 것이 매우 비현실적이다. 40대 이상이라면 뇌리에 있을 기억 속 골목놀이와 뇌수가 터져 나오고 허리가 부러지는 잔혹한 실패의 결과는 말 그대로 부조리하고 모순적이다.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 속 서바이벌 게임이 현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무인도, 매우 인공적인 세트 안에서 진행된다며 현실성을 지운다. 그저 가상의 설계와 인위적 설정을 즐기라고 권하듯이 말이다.

흥미롭게도 <오징어 게임>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이 갈린다. 국내는 이미 <배틀로얄> 방식의 과거 형식이라며 식상하다, 본 듯하다라고 실망하거나 심지어 지상파 TV 예능의 <무한도전> 속 각자도생과 뭐가 다르냐고 말하기도 한다. 반대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은 21일, 한국 콘텐츠로는 처음으로 <오징어 게임>이 미국 스트리밍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다소 과도한 설정과 단순한 이분법이 오히려 미국에서 통했다는 이야기다.

<헝거게임> <메이즈러너>를 비롯한 서바이벌 게임 서사는 미국의 주류 대중 서사 중 하나이다. 이 생존 서사들은 모두 먼 미래나 아주 먼 곳의 비현실적 세계를 배경으로 제시한다. 미국식 서사는 세상에 만연한 경쟁을 가상으로 꾸미고 주인공에게 생존과 일확천금을 선사한다. 그게 미국식 해피엔딩이고 판타지다.

하지만 한국에선, 특히 최근의 한국 서사에선 이런 식의 낭만적 판타지가 잘 통하지 않는다. <D. P.>의 비극적 결말이 불편한 진실이기에 오히려 더 환호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기생충>의 희비극도, 다소 과하지만 <보이스>의 범죄 해부도 집중하는 것은 바로 ‘현실’이다. 한국 관객들은 매우 사실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선호한다. 공짜는 없다. 일확천금은 그저 환상인 셈이다. 우리에게 사회적 문제는 단순 오락의 대상이며 판타지로 미뤄 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서 해결할 문제이다. 그런 시민의 태도가 대중 서사와 그것에 대한 반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