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탄 고래라고?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코스모폴리탄 고래라고?

나는 화초를 키운다. 겨울철 난방비 때문에 이때쯤 가격이 좋다. 1년 내내 잘 가꿔진 화초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반려동물 가구가 전체의 25%, 인구로는 1500만명 정도다. 주변에서는 대개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어려움은 동물 의료보험 문제다. 비용과 능력이 부족한 나는 스킨답서스처럼 싸고 잘 자라는 식물이 좋다.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 여성학자

간혹 친구들이 화분을 달라고 한다. 주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화초는 반려동물에 비해 이별하기 쉬운 ‘가족’일까. 아니면, 전통적인 동식물의 위계 때문일 수도 있다. ‘동물의 왕국’과 ‘식물인간’에서 가장 뚜렷한 구분은 이동성이다. 장애인, 건강 약자도 마찬가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비중 있는 기준의 하나도 이동성이다.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그간 인간은 지구 생명체의 서열을 매겨왔다. 기본적으로 미생물, 식물, 동물로 나눈 다음, 동물이 최고이고 그중 포유류가 가장 발달한 생명이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다. 식용과 비식용으로 나누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바이오산업의 발달로 미생물이 자본주의 산업의 총아가 되었다. 결국 모두 인간 중심적 사고다. 그리고 이 서열에 따른 생명체 파괴가 오늘날 기후위기의 원인이다.

얼마 전 어느 독립서점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작은 엽서에 적힌 홍보물로 출전은 없었다. “고래, 가장 진취적인 코스모폴리탄 5.500만년 전 고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바다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후 고래는 가장 진취적이며 혁신적인 진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어류와 포유류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1년에 25.000㎞의 바다를 항해하는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2만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를 뚜벅뚜벅 걸어나와 지구의 가장 책임감 있는 생명체, 호모사피엔스가 되었습니다. 인간과 고래는 오늘날 아름다운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코스모폴리탄입니다.”

인간을 피하는 데 성공한 생물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지금 100만종이 멸망하고 있다
그 부메랑으로 팬데믹에 갇혀
우리도 고래도 갈 곳이 없다

코스모폴리탄의 바른 표기는 코즈모폴리턴이다. 코즈믹(cosmic)은 ‘세계를 내 집처럼 여기는 세계적인’이라는 형용사다. 인간과 고래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현실과 거리가 먼 낭만적인 글이다. 더구나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책임감 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다른 생명체와 다르지 않은 지구 구성원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한 가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모든 인류가 코스모폴리탄도 아니다. 80억 인류 중 제프 베이조스 같은 사람은 별다른 재미도 없어 보이는 우주여행을 하는데 큰돈을 쓰고 10억명이 넘는 인구는 기아와 오염수에 시달리며 여행이 아니라 잘 곳을 찾아 이동하는 난민이다. 학교가 문을 닫은 팬데믹 시대에는 평범한 시민의 외출도 자유롭지 않다.

‘기후위기’는 너무 안일한 표현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말대로 지구가 버티기까지 면도날만큼의 시간이 남은 지구 소멸 직전이다. 지금 고래는 어디든 가는가? 고래야말로 인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그 생생한 내용 때문에 처음에는 문학이 아니라 수산학으로 분류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고래 경(鯨), 이 글자의 의미는 물고기의 ‘서울’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라는 뜻이다. 고래 이야기는 고래 자체의 특성과 인간의 대(對)자연 투쟁 서사의 상징성 때문인지 언제나 흥미롭다.

최근 읽은 <고래가 가는 곳>(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은 소개 문구가 책의 내용을 정직하게 요약하는 드문 예다. “바다의 바닥에서 태양계의 먼 곳까지, 영겁의 광대한 공간에 걸쳐 있는 에세이.” 무엇보다 이 책은 고래를 ‘통해’ 지구를 해석한다. 이른바 ‘내재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브라이언트 오스틴이라는 사진작가는 3000m까지 잠수하는 3년생 향고래 몸 전체를 촬영했다. 작품의 이름은 <이니그마>. 현상하는 데만 30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작품의 길이는 7m, 총 무게만 200㎏이다. 고래의 무게가 아니라 사진의 무게만 200㎏. 전 세계에 원본이 하나밖에 없단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고래의 눈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래의 거대함 때문에 인간은 고래 전체를 볼 만한 용기가 없다. 결국 인간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고래의 눈을 통해, 고래와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발터 베냐민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동물을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과의 접촉에서 우리의 정체가 탄로날까 싶어서다.”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니,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할 때 늘 염두에 둔 생명체에 틀림없다. 콤플렉스다.

그러다가 ‘170㎝의 60㎏’ 인간이 178t까지 나가는 수염고래를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날이 온 것일까. 마르크스가 죽을 때 “(나도) 자본주의가 이처럼 발전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은 옳았다. 당대의 자본주의는 한계 없는 자본주의, 절대적인 자본주의다. 이 사실을 은폐하고 싶었던 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로 불안한 상태를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지가 구원이었거나.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성격은 지구 존재와 양립할 수 없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김영현 옮김)의 일본어 원제는 <인류세 시대의 자본론>이다. 인간 활동이 지질 구조를 변화시킬 정도로, 이미 지구는 이전의 지구가 아니라는 얘기다.

자취 없는 범죄는 없다. 바로 직전의 충적세가 아니라 인간의 파괴 흔적이 지층의 으깨진 흙으로 들어가 화석이 된다. 핵무기는 침적토와 퇴적물의 방사성 동위원소로 확실한 흔적을 남긴다. 무수한 폭발물이 어디서 터지고 어디서 버려지는지 해저의 변형으로 알 수 있다. 주한미군의 폭격 연습장 매향리를 생각해보라.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왠지 묵시론적 분위기가 강했다. 그에 의하면, 글로벌 자본주의 이전에 권력이 경계를 구획, ‘선 긋기’를 통해 인간을 통제했다면(이주민, 난민 등) 당대 자본주의는 경계를 수시로 임의로 변경시킨다. 덕분에 기본적인 삶의 원칙은 사라졌고, 우리는 각자의 처지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공동체가 파괴된 삶, 당연히 계획이 안 된다. 코로나와 위드 코로나는 같은 코로나 체제다.

코스모폴리탄? 우리도 고래도 갈 곳이 없다. 고래는 큰 동물이지만 소음과 진동에 민감해서 “바다는 미래의 보고”라는 구호 아래 벌어지는, 지구와 우주에서의 인간이 벌이는 공사판을 견디지 못한다. 빙하가 무너지는 소리만으로 고래는 탈진한다. 대륙 간 무역, 예를 들어 페루에서 잡은 대왕 오징어가 진미채를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도착하기까지 바닷길은 고래에게는 지진과 같은 충격일 것이다.

인간을 피하는 데 성공한 생물만이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인간이 더 많은 더 넓은 세계의 물건을 소비할수록, 다른 생명의 삶의 범위는 급속도로 축소된다. 채식을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 재배한 식자재로 지역에서 자급하는 로컬 푸드 시스템이 절실하다.

나는 동물 애호가도 아니고 자연을 특출나게 사랑하지도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적절한 관계를 바랄 뿐이다. 나는 결국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정확한 부메랑. 결국 우리가 살지 못하게 되었다. 영원한 팬데믹이 그것이다.

세계자연기금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포유류, 어류, 파충류를 포함한 척추동물 중 약 60%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프랑스의 생물학자들은 13만종이 멸종되었다고 본다. 유엔은 약 100만종이 조금씩 멸망을 향해가고 있다고 보고한다. 지금 지구에 사는 새들 중 70%가 사람이 먹는 가금류이고, 전체 포유류의 60%가 가축(소와 돼지)이다.

이제 지구상에는 세 가지 생명체만 남을 것이다. 첫째 부자들, 둘째 그들이 먹는 식용 생물, 그리고 그들을 탈나게 하거나 이를 잠시 막아줄 바이러스. 사람을 먹는 좀비 이야기는 바로 목도하는 현실이 되었다. 일부 바이오산업은 살아 있는 인간의 장기, 신체 매매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에서 가장 인간적인 죽음은 권총 자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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