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선서의 배신과 권력욕망

가난한 농어촌 출신 청년이 있었다. 아버지가 ‘양아치’에다 힘깨나 썼기에 아들도 학교에서 ‘어깨’로 통했다. 어느 날 집에 왔는데, 그 위대한 아버지가 한 신사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만 살려 달라며 빌고 있었다. 검사였다. “저게 진짜 권력이다!” 그 순간, 청년이 바뀐다. 노~력 끝에 서울법대를 거쳐 검사까지 됐다. 그러나 검사라고 모두 ‘힘’ 있는 건 아니었다. 99%는 하루 30건 이상을 처리하는 ‘3D 노동자’일 뿐, 힘은 오로지 1%에 있었다. 이른바 ‘정치검사’! 그들은 마치 김치를 익히듯, 사건 또한 비밀 창고에 잘 삭혔다가 필요시 꺼냈다. 이슈로 이슈를 덮기! 언론도 동조했다. 그렇게 그들은 재벌도 정치도 맘대로 했다. 대통령조차 그들이 선택한다. 혹 차질이 생기면 재빨리 충성하듯 새 이슈를 꺼냈다. 그런 식으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을 두루 요리했다. 영화 <더 킹>이다! 문제는 이게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란 점!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경영학자 D 맥클리랜드는 사람의 고차 욕구를 성취욕, 권력욕, 친교욕으로 나눴다. 모두 비슷하지만, 1% 정치검사들은 권력욕망에 목을 맨다. 물론, 이는 재물욕망과 쌍둥이다. 그 공통점은 상호 자극하면서도 영원한 불충족 상태란 것! 이들을 불 지피는 건 성취욕망이다. 법을 매개로 한 기득권의 성취! 결국 이 세 욕망은 쉽게 ‘중독’이 된다! 한국은 지난 70년 이상, 반공 이념을 토대로 재벌, 금융, 정치, 언론, 검찰, 조폭이 일종의 권력동맹을 맺었다. 엘리트 집단에 유달리 일중독, 권력중독, 재물중독이 심한 배경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검찰총장 출신의 후보가 손에 왕(王) 자를 새긴 것도, 또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내가 대통령 되면 철저히 잡아넣을 것”이라 한 것도, 광주 학살 주범 전두환을 옹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고 보니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말도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일 뿐, 정의나 민주주의와는 멀다. 청년들이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외치던 시절, 오직 독서실에서 고시 공부만 했던 대다수도 마찬가지! ‘고발 사주’ 의혹을 받는 손준성 검사가 공수처 제1호 구속감이었던 것은 시사적이다.

의사의 맹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마찬가지로, 검사들 역시 ‘검사 선서’를 한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는 사명”을 띤다. 그래서 모두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가 될 것, 그리고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 물론 이 선서를 충실히 지키는 이도 많다. 하지만 ‘정치검사’들은 이를 가벼이 배신한다.

첫째, 범죄로부터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기보다 권력을 위해 이웃을 희생시키는 죄를 범한다. 1990년대 초 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김기설이 분신자살하자 당시 곽모 검사는 강기훈에게 “유서 대필”과 “자살 방조”를 했다고 조작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삶만 짓뭉갠 게 아니라 민주화 운동 전반을 박살냈다.

둘째, 불의에 맞서는 용감한 검사가 아니라 감히 불의를 저지르기도 한다. (여성) 피의자를 심문하다가 음흉한 생각에 잘 봐주는 대가로 성 상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또, 재벌 비리를 조사하러 갔다가 느닷없이 그 법무실의 고위직으로 변신한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검사 출신 변호사) 김용철도 처음엔 그랬다가 나중에 내부고발자가 됐다.

셋째,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라기보다 권력·재물욕망을 위해 진실 배반도 한다. 노동운동가는 구속 수사나 엄벌하면서도, 재벌 회장은 유죄도 무죄로 만든다. 심지어 영화 <자백>의 유우성 사례처럼,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해 정보기관과 공조해 ‘국가보안법’에 따른 간첩도 제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장동 ‘화천대유’ 비리 사건에 다수의 검사 출신 인사들이 이래저래 연루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따라서 대선 후보들 사이에 ‘아무 말 대잔치’로 저질 코미디만 연출할 일이 아니라, 차제에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철저히 해서 정의와 인권, 진실을 바로 세워야 한다.

대통령 선거건 국회의원 선거건, 선거란 최소한의 민주주의라도 하자는 것이지 1%의 권력 욕망을 채우려는 게 아니다. 권력은 한순간이지만, 민주주의는 영원하다! ‘정치검사’들이여, 이제 제 자리(검사 선서)로 가시라!!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또다시 외친다. 민주주의여, 만세!!! 그런데, 도대체 이 외침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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