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내가 할 수 있는 일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녹색세상’에 처음 쓴 글은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다’였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따라 나름 비장하게 선언했으나 코로나19로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하는 찰나 이런 기사가 떴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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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글래스고에 400대의 전용기가 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그룹 대표도, 찰스 영국 왕세자도 모두 전용기를 타고 등장했단다. 전 세계 대표들이 탄 전용기는 영국인 1600명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한 번에 내뿜었다. 모두가 툰베리처럼 태양광 요트를 타고 총회에 참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전용기의 이산화탄소를 상쇄하는 자세로 탄소 배출량을 빠르고 극적으로 줄일 합의안을 내놓아야 했다. 우리의 미래가 달렸으니까.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존슨 영국 총리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총회에서 졸고 있는 사진이 떠돌았다. 눈을 감은 표정이 목가적이어서 저들은 불타는 집 앞에서도 잘만 잘 것 같았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세계 정상들이 막대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약속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회의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지구 온도는 1.5도 이상 상승하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중국,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는 물론 물에 가라앉아 사라져가는 투발루, 탄소를 흡수하는 원시림을 불태우는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이 머리를 맞대고 협상한다. 투발루 외교장관은 물에 잠긴 자국의 해안가에 정강이를 담근 채 변화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100여개 국가가 2030년까지 산림파괴를 중단하겠다고 합의한 것 외에는 별 성과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비행기를 안 탄다 했으니 글래스고로 날아가 시위를 할 수도 없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책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정작 그들은 그 책을 베고 주무시겠지. 우리의 마음은 뜨거운 지구처럼 폭발한다. 한 영국인은 “그들은 당신들에게 소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고 휴가를 가지 말라고 한다. 새 전기차로 바꾸고 비싼 친환경 보일러를 새로 구입하라고 한다. 전용기를 탄 엘리트들은 당신을 비웃고 있다”고 일갈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 강력한 메탄가스를 배출하는 소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며, 최소 3년은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차가 꼭 필요하다면 전기차를 구입하겠고, 좀 비싸도 콘덴싱 1등급 보일러를 선택할 것이다.

내게는 기업과 소비자, 정치인과 시민, 제도와 실천을 나눠 나만 잘해서 무슨 소용이냐고 따질 염치나 시간이 없다. 당사국총회가 망하더라도, 세계 정상들이 하나마나한 소리만 늘어놓는데도 나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재사용 용기에 리필하는 상점에서 빈 용기를 씻어놓고, 가방에는 텀블러를 넣어 다니고, 국 끓일 때 냄비 뚜껑을 닫아 에너지를 아끼는 하찮은 습관도 잊지 않겠다. 동시에 더 나은 대안과 제도를 요구하는 댓글을 쓰고 기후위기 행진에 참여하겠다. 그리고 전용기를 탄 당신들에게 분노하겠다. 카뮈는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는데, 얼굴은 모르겠고 내가 내뱉은 탄소만큼은 책임지는 태도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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