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가락시장을 청년 기본도시로

송기호 변호사

잠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청년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선 고층건물을 본다. 역세권 청년주택의 하나이다. 서울의 대중교통 중심지에 있는 땅 소유자에게 용도지역 종상향과 용적률 특혜를 주면서 고층 집합건물을 짓게 해 준다. 대신 10년간 청년들에게 시세보다 싼 보증금과 월세로 세를 주는 민간임대주택방식이다. 10년이 지나면 건물주는 대부분 자유다. 25% 남짓한 방을 계속 청년임대로 제공하더라도, 청년주택이 아니었다면 애초 도시계획상 지을 수 없던 고층건물이 그의 손에 남는다. 청년들은 땅 소유자의 자산 가치를 올려주고, 결국 방을 빼야 한다. 청년주택 고층건물을 짓기 전보다 청년들과 기성세대 사이의 자산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진다. 한 해에 19조원의 세금을 계획보다 더 걷는 나라에서 이 방식이 청년을 위한 최선의 주택일까?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청년 조귀동은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지금의 청년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다르다고 말한다. 세습 중산층의 자녀가 반듯한 일자리마저 독식하고,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다수의 청년들은 결혼과 주택 등의 생애 주기 기회에서조차 밀려나는 새로운 불평등을 보라고 역설한다. 오늘날 청년이 겪는 좌절은 그 뿌리가 깊고 구조적이다. 그래서 청년 공공근로 일자리와 같은 일회적 방식으로는 근본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청년들에게 주거·교육 등의 사회적 자산을 제공하는 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청년 기본도시’라고 부른다. 이는 이일영 한신대 교수가 ‘동향과 전망’에서 제안한 청년 기본자산제에서 비롯했다. 그는 수출제조업 대기업에서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청년들이 생활과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청년 기본도시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주거, 진로 설정 기회, 교육, 그리고 농지 등의 사회적 자산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근본적 대응이 필요한 까닭은 청년들이 겪는 불평등이 구조적이며 세계적 차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경제는 강한 달러가 가져다주는 자본 유입에 터 잡고 서 있다. 미국 경제는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 가치를 평가하여 얻는 수익을 동력으로 한다. 그곳의 핵심 가치는 유동성이다. 조너선 레비 시카고대 교수의 <미국 자본주의 시대>에 의하면 이미 1982년, 미국 제조업 기업의 총수입의 40%가 금융 자산 평가 이익에서 나왔다. 미국은 강한 달러를 포기하지 못한다. 삼성과 현대가 국제적 제조업 분업체계 구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강한 달러가 미국에 주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미국 소비자가 소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경제에서 자산도 없고, 부모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대다수 한국 청년들을 위한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나는 용산과 가락시장에 청년 기본도시를 세우자고 제안한다. 약 200만㎡의 용산 미군기지터에 공원뿐만 아니라 청년을 위한 도시를 만들자. 청년이라면, 그가 청년인 기간 동안에는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을 짓자. 청년 기본도시에서는 청년에게 자신의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일영 교수가 분석하듯이 오늘날의 청년에게는 관계망이 더욱 필요하다. 청년에게 다양한 관계망 기회를 사회적 자산으로 제공하자. 청년이 자신만의 좁은 기회와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취업과 진로를 보는 안목을 갖도록 하자. 장기간 근무한 대학교수에게 안식년이 있듯이, 청년들에게 일정 기간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약 55만㎡의 가락시장을 주목한다. 우리 사회는 한사코 기후위기는 곧 농업위기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생태와 농업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그들 가운데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을 고민하는 이도 있다. 현재 약 1조원의 예산을 들여 가락시장 시설을 현대화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 더 예산을 투입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산물 유통 시설과 함께 청년의 진로 모색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 도시 출신 청년들이 농업으로 나아가는 정거장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것처럼, 삼성과 현대의 성공이 대다수 청년들에게 기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청년 민간임대주택이 아니라, 청년들이 성장할 사회적 공공 자산을 건설하겠다는 사회적 결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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