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와 윤석열, 그 ‘환상의 콜라보’

김민아 논설실장
20일 여의도 새시대 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 참석한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가 신지예 한국여성정치 네트워크 대표에게 환영의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일 여의도 새시대 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 참석한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가 신지예 한국여성정치 네트워크 대표에게 환영의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성 정치인 신지예(31)가 2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후보 직속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신지예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정의당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한 바 있다. 선거 슬로건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었다. 올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무소속(팀서울) 후보로 나섰다.
 

김민아 논설실장

김민아 논설실장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신지예는 “윤 후보가 여성폭력을 해결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좌우를 넘어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과 조국 사태, 박원순·안희정·오거돈 사건을 비판하며 “윤 후보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길에 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지예와 국민의힘의 결합은 이질적이다. 신지예는 지난 6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선되자 “여성혐오와 차별적 언동을 행하는 인물이 제1야당 대표가 되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7월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자 규탄 기자회견을 당사 앞에서 열었다. 10월엔 기고문에서 “양아치와 조폭 중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라고 했다. 지난달에도 트위터에 “국힘(국민의힘)은 페미니스트들의 대안이 될 수 없죠”라는 글을 올렸다.
 
신지예의 돌연한 선택은 ‘상징자본’의 사유화라 부를 만하다. 여성·청년·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상징자본은 혼자 쌓아올린 성취가 아니다. 오랜 시간 지지자들과 함께 이뤄낸 것이다. 예컨대, 4·7 서울시장 보선 당시 신지예를 찍은 1만8039명은 지금 신지예의 선택에 동의할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거나 형해화하고, n번방 방지법을 ‘검열법’으로 몰아붙이며, 성폭력처벌법에 무고 조항을 만들겠다는 정당의 집권을 기대할까?
 
정치인의 선택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취에 힘을 보탠 지지자들에게 설명할 근거와 맥락이 있어야 한다.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그가 국민의힘으로 간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 실망했으니 이번엔 윤석열의 약속을 믿어보겠다’는 것뿐이다. 윤석열의 약속이란?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없다.
 
청년도 권력의지를 품을 수 있다. 아니 품어야 한다. 다만 가치와 신념, 노선과 정체성이라는 땅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삼으면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선택은 불쏘시개로 이용되기 십상이다. 1주일간 계속된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의혹을 덮는 데 신지예는 이미 일조하고 있다. 신지예의 돌출행동이 꾸준히 신념을 지키며 활동해온 청년 정치인, 특히 여성청년 정치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렵다.
 
윤석열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정당 안에 있으면서 결론을 도출해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이 된다”고 점잖게 말했다. 진짜 속내는 김한길 새시대준비위 위원장이 내비쳤다. “ ‘이대남(20대 남성)’은 윤 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편이지만, 젊은 여성층은 아직 특정 후보 지지를 결정 못한 분들이 제일 많다.”
 
실제 지난 3일 공개된 리얼미터·오마이뉴스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여성 중 부동층은 23.7%로 전 성별·세대 중 가장 높았다. 윤석열로서는 이준석으로 ‘이대남’ 지지를 확보했으니, 이제 신지예로 ‘이대녀’를 노려보겠다는 심산일 터다. 그러나 정치는 ‘1+1=2’ 식의 산수가 아니다. 20대 여성은 신지예가 표방한 가치에 동의했을 뿐, 팬이나 추종자가 아니다. 신지예를 영입하며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어떤 변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외려 이준석은 벌써부터 신지예 길들이기에 나선 터다. “(두 사람의 의견이) 만약 충돌한다면 당대표 의견이 우선한다. 만약 지금까지 하던 말을 지속하기 위해 들어온 거라면 강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MBC 인터뷰)
 
신지예가 국민의힘에 합류한 날, 칠레에선 35세 좌파 정치인 가브리엘 보리치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보리치는 2011년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시위를 이끈 지도자로 이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의 당선은 2019년 칠레를 뒤흔든 사회 불평등 항의시위의 연장선에 있다. 분노한 시민은 피노체트 군부정권 당시 제정된 헌법을 폐기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변화의 열망은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탄생으로 이어졌다. 변화란 이런 것이다. 일관된 가치를, 대중과 함께, 꾸준하고 성실하게 추구할 때만 일어나는 ‘희귀한’ 사건이다. 상징자본만 믿고 단기필마로 돌진한다고 벽이 무너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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