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위는 언젠가

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저 바위는 언젠가

바위에서 긁어낸 이끼들로

배를 채운다

그럴 때마다 바위에 아주 작은 상처를 입힌다

최소한의 양분으로도 살 수 있게 되고

창자는 점점 단순해지고

저 바위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허기진 손톱들에 의해

나희덕(1966~)

시인은 ‘이끼’라는 시에서 “닳아지는 살 대신/ 그가 입혀주고 떠나간// 푸른 옷 한 벌”인 이끼를 “분노와 사랑의 흔적”이라 했다. 무심한 듯 흐르는 물이 남겨놓고 간 이끼는 분노를 삭여주고 사랑의 상처도 감싸준다. 물의 위로에 닳은 마음도 치유된다. 물에 의해 생겨났지만, 물과 함께 흘러가지 못한 이끼는 한곳에 정체한다. 물이 세월이라면 이끼는 흘러가지 못한 마음이다. 25년쯤 지나 시인은 흐르는 물의 이끼 대신 한곳에 붙박인 바위의 이끼를 소환한다.

이끼는 상처를 가려주는 옷에서 배고픔을 채워주는 양식으로, 삶의 모습도 수동에서 능동으로 바뀐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도움을 받던 입장에서 주는 위치로 변한다. 하지만 삶의 겸허는 그대로다. “바위에서 긁어낸 이끼들로/ 배를 채”울 때마다 “바위에 아주 작은 상처”를 입힌다. 표시조차 나지 않는 최소한이지만, 언젠가 바위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만약 이 바위가 지구라면, ‘최대한의 소비’로 지구를 착취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미래는 어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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