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칼은 다 어디 갔을까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주방장님은 무슨 칼을 쓰세요?

요리사인 나는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부엌칼 씁니다. 상대가 빵 터진다. 농담하는 줄 안다. 부엌칼이란 말은 뭔가 아마추어 냄새가 나서 그런 듯하다. 전문 주방장이 부엌칼이라니. 부엌칼이란 말은 전쟁시대의 용어다. 적을 베는 무기가 아니라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칼이란 뜻이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철마다 파출소에 이런 계도문(?)이 붙어 있었다. “총포도검류 자진신고기간 ○○○○년 ○월 ○일부터….”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도검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존재다. 같은 칼이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무기가 되기도, 부엌칼이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사시미칼’이 그렇다. 듣기로, 조직적인 깡패들이 무기를 갖추긴 해야 하는데, 일본도 같은 장검을 갖고 있으면 총포류단속법에 걸렸다. 그래서 사시미칼, 즉 회칼을 준비했다고 한다. 칼은 그것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 하는 존재의 상황이 물질의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일식집 부엌에 놓여 있는 회칼은 아무리 칼같이 벼려 놓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부엌칼이라는 말은 뭔가 가정용 칼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낮춰보는 시선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먹여 살린 어머니의 부엌칼을. 옛날로 돌아가자면, 어머니의 부엌칼은 코가 위로 쑥 솟고 무쇠로 만들어서 두툼하고 시퍼런 날이 있었다. 조선 궁중 연회 그림에서 보이는 숙수(남자 전문 요리사)의 칼은 어머니의 부엌칼과 닮았다. 아마도 그게 조선칼, 즉 부엌칼일 것이다. 이제 이런 부엌칼을 쓰는 이들은 별로 없다. 정말 제법이나 재료가 조선식(전통) 부엌칼이라고 확인할 수 있을 만한 것도 드물다. 남원칼, 화성칼 같은 우리 지명을 담은 칼이 그나마 명맥을 잇는 것 같다. 이런 칼은 인터넷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손잡이 뒤에 마늘을 찧을 수 있게 설계된 걸 보면 틀림없이 우리 칼이다. 스테인리스제도 있지만 대개 강철을 쓰고 있어서 날도 잘 선다. 숫돌이나 칼갈이용 샤프너에 쓱쓱 문지르면 금세 날이 올라온다. 단점도 있다. 강철 칼은 녹이 잘 스는 편이다. 쓰고 나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여 말려주면 된다.

이웃 일본은 칼에 대한 신화적 태도를 갖고 있는 나라다. 수십 대를 이어오는 가문도 많다. 유명 제작자(대장장이)의 이름 하나가 붙으면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스시’ 열풍을 타고 전 세계의 요리사들이 일본 칼의 날카로움에 반했다. 수출을 많이 해서 칼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금속에 관한 높은 명성을 갖고 있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그들은 금속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당연히 칼도 잘 만든다. 독일 칼은 곧 명품 칼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실제로는 그저 그런 칼이 많은데도 그렇다.

우리 칼에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좋은 칼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칼 대장장이, 즉 칼 제작 장인은 대부분 연로하다. 대가 끊길 수 있다는 뜻이다. 잘 만들고 많이 사줘야 좋은 칼도 나온다. 어머니의 부엌칼이 정말 훌륭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대로 개성이 있는 칼은 분명했다. 우리 칼에 대한 연구부터 누군가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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