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독선 사이

김진우 정치부장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침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을 들을 수 있게 된 점이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약식 회견)을 꾸준히 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의 궁금증에 답하면서 대국민 소통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실이 “역대 대통령과 비교 불가능한 소통 방식과 횟수를 통해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했다”고 자평하는 이유일 것이다.

김진우 정치부장

김진우 정치부장

그러나 도어스테핑의 그늘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말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데다, 자신의 생각을 강변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검찰 편중 인사’ 논란에 “과거에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사실관계도 틀리지만, 문제는 ‘너희도 했으니 우리도 해도 된다’는 식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틀 뒤엔 “필요하다면 또 (검찰 출신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비판 여론에 귀를 닫아버렸다는 인상을 주는 답변이다.

지난 23일 발언도 논란을 불렀다. 경찰 고위직 인사가 2시간 만에 번복된 사태에 대해 “중대한 국기문란” “어이없는 과오”라며 경찰을 질타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난 사태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마치 남 대하는 듯한 태도다. 반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없이 검찰 고위직 인사를 단행한 데 대해선 “우리 법무부 장관이 잘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식물총장’ 우려가 나온다는 지적엔 “검찰총장이 식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이 2년 전 검찰총장일 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자신과 협의 없이 검찰 인사를 단행하자 강하게 반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윤석열식 도어스테핑의 문제점은 지난 24일 극명하게 표출됐다. 고용노동부가 전날 발표한 주 52시간제 개편 방침에 대해 윤 대통령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보고받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혼선이 벌어진 것이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서둘러 수습에 나섰지만, 국정 최고책임자가 현안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를 냈을 때 초래할 혼란을 보여준 사례다. 정부의 정책 신뢰도에 흠집이 간 건 물론이다. 윤 대통령은 배우자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에 대해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대통령직은 그런 말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물론 대통령이 자주 기자들과 문답을 나누는 것은 긍정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로 그쳐선 안 된다.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판 여론을 수용하기보다 ‘마이웨이’를 강변하는 것은 ‘반쪽 소통’일 뿐이다. “국민이 바라는 바가 뭐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걸 충족시켜주는 것이 가장 국민과 소통을 잘하는 것”이라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충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늘어난 대통령의 말들이 주로 무엇을 보여주는가이다. ‘옛 대통령과 싸우는 새 대통령’이지 싶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전 정부 사건을 쟁점화하고,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권에선 “신적폐청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도 들려온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라면서 대결 정국의 중심에 섰다.

그런데 전 정부와 비교하면서 임기 5년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 정부에 대한 ‘내로남불’ 공격은 ‘너희들도 마찬가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도어스테핑에서 대통령의 자기 옹호나 항변을 듣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민심은 어느 순간 대통령이 앞으로 뭘 할 것인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묻게 될 것이다. 금태섭 전 의원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과거에 있는데 어떻게 미래를 내다보고 필요한 일에 노력을 쏟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집무실 용산 이전을 강행하면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이유를 댔다.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할 경우 독선과 오류에 빠지기 쉽다. 가뜩이나 검찰 편향 인사로 ‘끼리끼리 해먹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다양성 훼손과 시각의 협소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몸은 청와대 밖으로 나왔지만 생각은 갇혀 있지 않은지 되짚어볼 때다. 윤석열식 소통 행보에 대한 평가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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